[외교비사⑭ <상>] 한국 47.5만불…마이클 디버 '로비 사건'

김정수 2024. 10.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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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심복'…한국에 로비 계약 제안
정부, 美 보호무역 우회 위해 거액 마련
'코리아 게이트' 비화 가능성에 노심초사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거물급 로비스트로 활동한 마이클 디버의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 재구성했다. 디버의 고객으로는 한국도 포함됐는데 당시 우리 정부가 지급한 액수는 47만5000달러였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86년 미국 정가를 뒤흔들었던 로비스트 마이클 디버(Michael Keith Deaver).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백악관 비서실 차장을 지낸 그는 '레이건의 아들'로 불릴 만큼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디버는 백악관을 나온 뒤 로비 회사를 차려 각국을 상대로 거액의 계약을 따내기 시작했는데 한국도 고객 중 하나였다. 당시 디버는 한국 정부와 47만5000달러, 대우그룹과 25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디버는 법의 울타리를 벗어나 로비 활동을 펼쳤다는 이유로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다. 정부는 '제2의 코리아게이트'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노심초사했다.

1985년 6월 7일 주미 대사관에 마이클 디버 전 백악관 비서실 차장이 찾아왔다. 디버는 자신이 백악관 전 보좌관들과 컨설턴트 회사를 설립했다며 "한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홍보전략 △무역 문제 △로비 조정 △기타 정보 수집 등 5가지 사업 계획서를 건넸다. 디버가 제안한 금액은 월 25만 달러.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지만 정부는 '디버'라는 이름값에 베팅하기로 했다.

디버는 미국 정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살아 있는 권력인 레이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통령의 아들'로 불렸던 그였다. 디버는 백악관을 나온 뒤에도 백악관 출입증을 휴대할 수 있었다. 또 퇴임 후 자연인 신분으로 미-소 정상회담을 위한 전략 수립에 참여, 레이건 대통령에게 여러 조언을 건네는 등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정부는 디버를 잘만 이용한다면 톡톡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당시 한국은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불공정거래 조사 대상국'에 지정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권력의 핵심이 제 발로 찾아온 격이었다. 실제로 주미 대사관은 외무부(외교부) 장관에게 디버 면담 사실을 보고하며 "그를 잘 활용한다면 레이건 행정부 하에서는 '응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첨언했다.

디버를 만난 주미 대사관은 "디버를 활용 시 최소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응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유지비가 다소 과다한 느낌이 있지만 절충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고 보고했다. /외교부 제공

디버의 로비 제안 소식은 곧바로 청와대에 전달됐고,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1수석 주재 태스크포스(TF)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디버와의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계약 기간은 1985년 10월부터 1986년 9월까지, 계약금은 47만5000달러였다. 정부는 한국광고공사가 예산을 지출하면 이를 문공부(문체부)가 받아 사용하도록 했다. 다만 디버와의 계약 당사자는 문공부 산하 한국국제문화협회로 지정했다.

디버는 한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로비 계획서를 작성했다. 일례로 디버는 '301조 문제 지원'을 약속했다. 301조는 보호무역을 골자로 한 미국의 통상법으로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화하자 이를 적극 활용한 바 있다. 아울러 디버는 한국이 미국의 주요 우방이라는 인식을 높이기 위한 홍보 사업을 펼치고, 기업인 접촉과 한미 협의회를 통한 미국 내 친한 인사와의 협조 강화 등을 사업 방향으로 제시했다.

같은 기간 대우그룹도 디버와 25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정부와 일치했으며 디버가 대우그룹에 제시한 로비 계획은 '철강 덤핑 수출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문제'였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1986년 2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디버의 로비 활동을 폭로하는 기사를 보도하며 상황은 반전을 맞았다. 디버는 한국뿐 아니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푸에르토리코와 로비 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멕시코, 싱가포르를 상대로도 계약을 추진 중이었다. 문제는 디버가 '퇴직 후 1년 이내에 자신이 근무했던 기관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미 공직자 윤리법을 위반한 상태였던 것이다.

미 하원 민주당 의원들은 디버를 겨냥해 "가장 대표적인 외국 이익 대변자"라고 비난했다. 당시 미국은 무역적자로 허덕이고 있었는데,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이 외국의 이익을 위해 로비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디버가 작성한 한국 정부에 대한 홍보사업 계획안 표지. 총 38페이지로 구성된 계획안에는 301조 협상 해결 시 성명 발표, 주정부 관리와의 접촉 강화 등이 담겨있다. /외교부 제공

한국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불똥이 한국 쪽으로 튀는 건 시간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미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는 공개 청문회에 대우그룹의 철강 수입 문제를 포함할 예정이었다. 또 미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는 고위 간부의 로비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장일치 격으로 통과시켰다. 디버 로비 건에 대한 특별조사관(특별검사) 임명 요구도 이어져 특별조사관이 관련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현지 상황을 파악하던 외교부는 정부에 "제2의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적절한 기회에 디버를 포함한 주요 로비스트와의 계약 현황을 공개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박동선 게이트'로 홍역을 치렀던 과거를 되풀이할 바에는 차라리 먼저 패를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는 뜻이었지만 정부는 우선 디버와의 이별을 결정했다.

디버는 한국 정부의 계약 해지 요청에 "지난 5월 방한 때 한국 관계자들이 따뜻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는데 2개월 사이 입장이 급변한 것 같아 실망이 크다"고 답했다. 하지만 디버로서도 이를 물리칠 명분이 없었다. 디버는 대리인을 통해 계약 해지에 서명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특별조사관 결과가 좋게 나오길 기대한다"며 "9월 중으로 한번 한국을 찾겠다"고 말했다.

디버와의 관계를 정리한 정부가 후속 대책을 위해 머리를 맞댈 즈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김기환 해외협력기획단장과 레이건 대통령의 면담을 디버가 성사했다는 정황이 미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 언론은 김기환 단장이 디버의 한국 로비 활동에 있어 '열쇠'가 된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보도를 이어갔다. 여기에 디버가 무혐의 판정을 받을 확률은 희박하다는 분석까지 제기되면서 정부는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 주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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