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이상’ 하니와, 제국주의가 부활시킨 1400년 전 무사 [특파원+]
◆공군 조종사 품에 안은 고대 일본무사
고훈시대 일본 열도에는 철기 보급이 확대됐다. 벼농사도 발달해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계급이 생겼다. 앞은 네모나고 뒤는 둥근 형태의 대형 무덤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은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지배자가 등장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태평양 전쟁 전부터 하니와는 일본의 상징으로 종종 활용됐다. 1907년에 그린 한 그림은 초대 일왕 진무(神武)를 도와 각지의 호족을 제압한 오오쿠메 노 미코토(大久米命)을 주인공으로 했는 데 머리 모양, 귀걸이 등 장신구, 복식 등이 하니와를 참조했다. 1910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일·영박람회를 기념해 출판한 책의 표지에는 후지산과 함께 웃는 얼굴의 무녀(巫女) 하니와가 일본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고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하니와는 전의 고양을 위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하니아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에서 한 시인은 하니와의 용모에 남방 전선에 복무하는 젊은 병사의 얼굴을 중첩시키며 “그 표정의 밝음, 단순소박함, 맑음”을 찬미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면서 하니와 활용은 죽음을 신성화하는 데까지 치닫는다. ‘천병신조’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품에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미켈란제로의 조각 ‘피에타’의 구도를 빌렸다. 죽음을 신성화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구름을 타고 질주하는 조종사들은 ‘성스러운 바람’이라는 의미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떠올리게 한다. 한 고고학자는 아이를 업은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한 하니와를 두고 “마치 눈물을 참고 있는 표정이다. 자식이 전사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하니와의 얼굴은 ‘일본인의 이상’”이라고 했다.
국립근대미술관은 1943년 7월에 발행된 ‘전투기’라는 시집에 ‘여인 하니와’라는 시가 실렸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일본 사회 전체가 순국의 분위기로 덮여 있었다. 전의 고양을 위해 애국시에도 하니와는 동원됐다”고 밝혔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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