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화내고 트집잡고…웃어넘기기 어려워진 ‘풍각쟁이 오빠’

한겨레 2024. 10. 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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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ㅣ ‘오빠’ 노래들
‘오빠는 풍각쟁이야’ 책 표지. 알라딘 갈무리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 가요에 담긴 ‘오빠’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 흠, 예전에 정치풍자 선곡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은 적이 있기에 조심스럽다. 미리 밝히건대, 이 글은 순수하고 진지한 음악 칼럼일 뿐 대통령실이나 김건희 여사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빠 타령이냐고? 창작에 이유가 어디 있나? 한강이 갑자기 채식주의에 관심이 생겨서 ‘채식주의자’를 쓴 것이 아니듯, 나 또한 그 오빠가 ‘대통령 오빠’냐 ‘친오빠’냐를 따지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처갓집 강아지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최근에 나온 오빠 노래 중에는 신현희와 김루트가 부른 ‘오빠야’(2015)를 들어볼 만하다. 막 사랑에 빠진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오빠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혼자 끙끙/ 앓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얘기를 한다”

이 오빠는 친오빠일까 좋아하는 오빠일까? 아니면 그냥 하소연을 들어주는 아는 오빠? 후렴 가사를 보면 더 헛갈린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그렇다면, 좋아하는 오빠에게 다른 오빠와 사랑에 빠진 양 슬쩍 고백하는 상황 같기도 하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인물 관계가 선명히 드러나지만, 노래만 들어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노래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네번째 가요제인 ‘자유로 가요제’에서 밴드 장미여관과 노홍철이 합작해 만든 ‘오빠라고 불러다오’(2013)가 있었다. 아저씨가 아닌 오빠로 불리고 싶은 30대 남자들의 로망을 표현했다는 창작 의도에 맞춰, 선명한 멜로디에 직설적인 가사를 반복하는 호쾌한 하드록이다. 선동적인 에너지도 대단해서 스포츠 응원가나 선수들 등장곡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아직 못 들어본 분들이 있다면 꼭 들어보시길. 참고로 오빠와 아저씨의 경계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데, 나는 이렇게 구별한다. 오빠라고 불리길 원하는 순간부터 아저씨가 된다고.

그전에는 트로트 두곡이 오빠를 노래했다. 2007년에 박현빈이 발표한 ‘오빠만 믿어’와 2002년에 현숙이 발표한 ‘오빠는 잘 있단다’. 둘 다 신나는 멜로디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노래방 애창곡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사는 판이하다. 박현빈의 노래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호언장담이라면, 현숙의 노래는 이별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세월 속에서 오빠는 잘 있단다”라는 노랫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괜히 애잔하고 흐뭇하고 그렇다. 앞에서 소개한 밴드 장미여관도 같은 제목의 다른 노래가 있다. 이 노래 말고도 장미여관은 오빠가 화자로 등장하는 노래를 여럿 만들었는데, 자꾸 오빠 타령하는 걸 보니 영락없는 아저씨들인 걸로.

2000년에 나온 왁스의 ‘오빠’가 오빠 노래의 원조일까? 천만에. 진짜 원조를 찾으려면 무려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가수 박향림이 부른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만요 ‘오빠는 풍각쟁이’. 만요는 해학과 풍자를 담은 당시의 코믹송쯤 될 텐데, 풍각쟁이는 해석이 분분하다. ‘풍각’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농악단의 일원에서 유래된 표현이니 ‘딴따라’ 정도의 비하적 표현이라는 설도 있고(우리말의 보물창과 같은 소설 ‘토지’에는 악기를 연주하며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라는 뜻으로 등장한다), 말만 시끄럽게 하는 허풍선이라는 해석도 있다. 노랫말에 묘사된 오빠가 어떤 오빠인지 요즘 말로 풀어서 보자.

“오빠는 풍각쟁이야/ 오빠는 심술쟁이야/…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오빠는 주정뱅이야/…오빠는 짜증쟁이/…오빠는 대포(허풍)쟁이야”

정말이지 최악의 오빠가 아닐 수 없다. 술 마시고 화내고 트집 잡고 심술 내고 허세만 부리는 인간이라니. 그런데 옛날얘기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뭔가 예언적 가사 같기도 하다. 거의 한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런 한심한 오빠들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철없이 떠들다가 무시당하는…. 차라리 술주정뱅이로 패거리나 몰고 다니면 다행인데, 이런 오빠가 어쩌다 중요한 자리라도 맡게 된다면, 아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늘은 우리 가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노래 속 ‘오빠’의 모습을 정리해봤다.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학구적인 글이 됐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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