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경연에 사회를 담다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 교수)
최근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요리사 경연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큰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흑백요리사》 공개 전 폭발적인 인기를 예감하긴 어려웠다. 그전에도 요리사 대결을 많이 봤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너무나 익숙한 백종원이기 때문이다. 신선함이 떨어져 기대감도 저조한 편이었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이 공개되자 국내 'TV-OTT 통합 비드라마 화제성' 1위, 한국갤럽 조사 '요즘 가장 즐겨 보는 방송 영상 프로그램' 1위 등에 오르더니 해외에서도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비영어 부문 3주 연속 1위에 올랐다. 가히 신드롬적 인기가 나타난 것이다.
'먹방'과 요리 등 음식 주제 예능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요리사들이 예능의 주요 인재풀로 자리 잡아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탄생한 것도 오래된 이야기다. 일부 유명 요리사는 이제 웬만한 연예인 이상의 인지도를 확보했을 정도다. 요즘엔 음식이 예능의 주요 주제 중 하나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트렌디한 유행 상품이 아니라 언제나 챙겨 먹는 밥 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주제가 사라지지도 않고, 새삼스럽게 뜨거운 이슈로 돌출할 일도 없는 안정적 장르가 됐다는 말이다.
음식 예능 트렌드가 오래 지속된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신드롬을 일으킨 점은 놀랍다. 우리 예능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도 놀랍다. 원래 예능은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얻기 어려운 장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미국 영상물을 대단히 사랑한다. 과거엔 한국 영화보다 미국 영화를 더 좋아했을 정도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 시절엔 한때 정권에 잘 보인 국내 영화사에 해외 영화 수입권을 당근으로 줬다. 미국 영화를 들여와 상영하기만 하면 대박이 나기 때문이다.
또 국내 드라마 팬들이 한국 드라마를 폄하하면서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우리가 미국 영상물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미국 예능을 챙겨 보진 않는다. 해외 영상물에 대한 관심은 영화, 드라마로 한정되게 마련이다. 그만큼 예능은 해외로 퍼져 나가기 어려운 장르다. 그런데 《흑백요리사》는 국제적으로 터졌다.

예능에 들어간 '80 대 20'
《흑백요리사》는 일단 시각적으로 압도했다. 기존에도 음식과 요리사를 내세운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이 정도로 블록버스터 느낌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1000평이 넘는 주방에서 100명의 요리사가 일제히 요리 내공을 겨루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그 속의 모습들을 세세히 비췄다. 100명의 평가단이라든가 수십 대의 냉장고 모습 등도 압도적이었다. 많은 물량이 투입됐고, 만듦새도 뛰어난 대형 수작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진 것이다.
요리사 대결의 격이 올라가면서 대결 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갔다. 또 출연자 중 상당수가 '만찢남' '이모카세 1호' '중식여신' '급식대가', 이런 식의 캐릭터로 소개돼 그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특히 가장 크게 시청자를 끌어들인 건 우리 사회의 모습이 프로그램 구도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 사회를 80 대 20 구조라고 한다. 20%의 상층과 그 아래 80%로 나뉜 사회라는 뜻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80%에 속해 있다고 여기며 20%에 진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20% 진입은 아예 포기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동경만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80 대 20은 많은 대중의 선망과 염원, 절망이 담긴 키워드인데 《흑백요리사》는 그걸 예능에 구현했다. 경연에 임하는 요리사들을 80 대 20으로 나눈 것이다. 100명 중 20명은 이미 유명한 스타 요리사들로 선정해 '백수저'라 이름 붙였다. 80명은 무명 요리사들인데 '흑수저'라 불렀다.
현실처럼 엄청난 차별도 존재했다. 출발선을 다르게 한 것이다. 백수저 20명은 처음부터 2회전에 진출한 상태였다. 흑수저 80명이 생사를 걸고 싸워 20명이 남았을 때 비로소 백수저와의 대결이 시작됐다. 흑수저들이 1층에서 대결을 펼칠 때 백수저들은 2층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현실의 기득권 구조를 예능에서 은유한 것이다. 프로그램의 부제도 '요리 계급 전쟁'이었다.
이 계급 전쟁 구도가 20%를 향한 선망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대중의 마음 한곳을 정확히 타격했다. 그에 따라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80 대 20의 사회상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호응했다.

이 프로그램 제작진은 JTBC에서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을 만들었다. 《싱어게인》은 설움받던 무명 가수들을 조명해 큰 호응을 받았다. 그때도 80%의 마음을 대변한 셈이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명' 정도가 아닌 '흑수저'라고 부르면서 백수저와 확연히 대비시켰다. 《싱어게인》 땐 80%만 모아놓고 대결을 시켰다면 이번엔 80%들의 대결 이후에 20%와의 전면전까지 이어졌다. '계급 전쟁'으로 자극성을 더 키운 것이다. 시장은 '초대박' 성과로 화답했다.
심사위원은 백종원과 안성재였다. 백종원은 저렴한 서민 요리 프랜차이즈로 유명하다. 안성재는 고가의 정식 요리 전문가다. 심사위원도 흑수저 요리 전문가와 백수저 요리 전문가로 나눠 재미를 더했다. 백종원의 입담이야 원래 유명한데, 심지어 안성재까지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시한다" "재료가 이븐(Even)하게 구워졌다" 등의 어록을 유행시킬 정도로 빵빵 터져 흥행 열기가 더 강해졌다.
판타지도 있었다. 80과 20의 출발선을 다르게 한 차별이 현실 반영이었다면, 철저하게 공정한 경쟁구도를 만든 것은 판타지였다. 두 심사위원의 심사평과 태도 자체가 공정성을 의심하기 어려웠고, 결정적으로 중반에 블라인드 심사가 등장했다. 눈을 가리고 음식 맛만으로 심사한 것이다. 그 후엔 100명의 평가단이 가세해 더욱 공정성을 높였다. 스펙 등 모든 배경 정보를 다 삭제하고 오로지 당사자의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듯한 구도를 만든 것이다. 현실에선 나타나기 어려운 이상적인 모습인데 이처럼 공정한 경쟁구도에 흑수저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이렇게 대규모 물량 투입과 높은 완성도의 만듦새에 더해 사회의 모습까지 담아내자 이례적 신드롬이 터진 셈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해외에서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을 것이다. 시즌2 제작이 확정됐고 내년 하반기 공개가 목표다. 과연 내년에도 열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현재 고든 램지를 심사위원이 아닌 참가자로 섭외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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