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일으킨 착시 : K-콘텐츠 정말 살아있어? [視리즈]

이혁기 기자 2024. 10. 19. 10: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K-콘텐츠 침체의 경계선➊ 흑백 착시
신드롬급 인기인 흑백요리사
K-콘텐츠 이상 없는 걸까
올 초 MAU 감소한 넷플릭스
韓 콘텐츠 줄줄이 선뵀지만
주목할 만한 기록 못 남겨
사실상 흑백요리사 유일 흥행
K-콘텐츠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켰지만, 사실 K-콘텐츠의 위상은 예전만하지 못하다.[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요즘 OTT 시장은 '흑백요리사' 얘기로 가득합니다. 방송 당시엔 신드롬급 인기를 불러일으키더니, 종영 후엔 유튜브 등에서 2차 창작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열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흑백요리사를 두고 많은 이들이 이런 말을 늘어놓습니다. "K-콘텐츠, 살아 있네."

# 글쎄요, 정말 그럴까요? 따져볼 점이 좀 많습니다. 흑백요리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K-콘텐츠는 하향세를 그렸습니다. 올 상반기 넷플릭스에서도 수많은 K-콘텐츠를 방영했지만 대부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죠. 대부분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 문제는 그동안 K-콘텐츠의 강점으로 부각됐던 '가성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젠가부터 넷플릭스는 K-콘텐츠 1편 만들 돈으로 3~4편을 제작할 수 있는 일본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K-콘텐츠는 지금 괜찮은 걸까요? 혹시 흑백요리사의 놀라운 성공이 K-콘텐츠의 부진을 가리는 '착시효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더스쿠프가 K-콘텐츠의 현주소를 점검해 봤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K-콘텐츠 침체의 경계선' 1편입니다.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네요. 탈락입니다." 지난 8일 종영한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에서 심사위원이 한 말입니다.

단순한 심사평이었는데도 '이븐하게 익지 않았다'는 말은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부터 유튜브·SNS까지 온라인 곳곳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준비되지 않은 상황을 비꼬는 밈(meme)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가 유행을 탈 정도니,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17일 방영을 시작한 흑백요리사는 '백수저'라 불리는 20명의 스타 셰프와 재야의 고수 셰프 '흑수저' 80명이 대결을 펼치는 서바이벌 예능입니다. '요식업계의 대가'로 꼽히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현재 기준)인 안성재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면서 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죠. 방영 이후엔 흥미로운 진행방식과 참가자들의 뛰어난 실력이 어우러져 시청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는 통계로도 잘 드러납니다. 소비자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16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OTT 이용자 500명 중 52.0%가 '흑백요리사를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OTT 이용자의 절반이 흑백요리사를 본 셈입니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그래서인지 방송이 종영했음에도 흑백요리사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흑백요리사에서 1등을 차지한 나폴리 맛피아와 2등 에드워드 리는 지난 16일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흑백요리사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채널에서도 손쉽게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 온라인뿐일까요? 참가자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음식점은 수개월치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죠. 이쯤 되면 한국 시청자들이 '흑백요리사 앓이'를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사실 국내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흑백요리사는 해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넷플릭스 자체 통계에 따르면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 비영어 부문에서 한국 예능 처음으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흑백요리사가 K-콘텐츠의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한가지 짚어봐야 할 게 있습니다. 흑백요리사를 뺀 다른 K-콘텐츠도 여전히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까요?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흑백요리사가 나오기 전까지 넷플릭스가 선보인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채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렇다면 K-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 걸까요?

■ 문제➊ 부진한 흥행 성적=시곗바늘을 2024년 1월로 돌려, 넷플릭스의 관점에서 K-콘텐츠의 현주소를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용자 수 감소를 겪었습니다.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월간활성화사용자수(MAU)는 2023년 1월 1401만명에서 올해 1월 1282만명으로 1년간 119만명 감소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6월 MAU가 1096만명까지 떨어지면서 상반기 내내 감소세가 이어졌습니다.

넷플릭스가 '살인자ㅇ난감(2월 9일)' '더 에이트 쇼(5월 17일)' '스위트홈 시즌3(7월 19일)' 등 굵직한 한국 드라마를 잇달아 선보였습니다만, 줄어드는 이용자 수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인기 배우 마동석이 참여한 '황야(1월 26일)', 송중기 주연의 '로기완(3월 1일)' 등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영화도 국내에서 혹평을 받았습니다. 황야의 경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평가자의 47.0%가 황야에 최하점(10점 만점에 1~2점)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해외 평가도 그닥 좋진 않습니다. 로기완의 경우, 3월 첫째주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부문에서 시청수 310만뷰로 3위에 머물렀습니다. 순위는 높지만 1위 '스루 마이 윈도 3: 너에게 머무는 시선(920만 뷰)'과 2위 '더 어비스(730만 뷰)'와의 시청수를 비교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믿었던 '흥행 보증수표'인 K-콘텐츠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기록했으니 넷플릭스로선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그러자 업계에서도 '한국 콘텐츠가 경쟁력이 뒤처진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17일 '스위트홈 시즌3' 공개에 앞서 열린 넷플릭스 행사에서 "높아진 제작비와 투자금에 비해 한국 콘텐츠가 그만큼의 경쟁력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 건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정수 넷플릭스 프로덕션 총괄은 "창작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구현하고 싶은 걸 들어 주는 환경을 위해 투자를 많이 했다"고 말하면서 즉답을 피했습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넷플릭스는 '뒷수습'에 나섰습니다. 지난 6월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손을 잡고 10% 할인된 가격에 구독권을 팔고, 구독권을 포함한 중저가의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했습니다.

파격적인 마케팅 덕분인지 넷플릭스 MAU는 1096만명(6월)에서 9월 1166만명으로 반등했죠. 하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을 뿐, 이용자들이 언제 또 발걸음을 돌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시청자를 붙잡아 둘 흥행작이 절실한 상황이었죠.

이때 넷플릭스의 구원자로 등장한 게 바로 흑백요리사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을 시작한 9월 넷플릭스 MAU는 1166만명으로 전월(1121만명) 대비 4.0% 증가했습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정점을 찍은 지난 1일엔 일간활성화사용자 수(DAU)가 322만8868명까지 치솟으면서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3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처럼 흑백요리사의 흥행 덕분에 넷플릭스도 한시름 덜긴 했습니다만, K-콘텐츠의 경쟁력을 향한 의심을 거두긴 쉽지 않은 상황임에 분명합니다. 문제는 연이은 부진을 겪은 탓에 K-콘텐츠가 예전과 같은 '가성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킹덤' '오징어게임' 등 세계적인 흥행작이 나오면서 한국 배우들의 몸값과 제작 단가도 덩달아 올랐지만,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여기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넷플릭스 같은 한국 콘텐츠에 호의적이었던 투자자들도 '딴 맘'을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K-콘텐츠 침체의 경계선' 2편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