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왜 트럼프 당선에 '올인' 했을까 [스프]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2024. 10. 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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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테슬라와 X(구 트위터), 스페이스X 등을 거느린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의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뛰는 것이다. 그의 집과 주요 사업장은 텍사스에 있지만, 활동의 근거지를 대선 최대 경합주라는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로 아예 옮겼다. 위기에 빠진 테슬라를 회생시키기 위해 공장에서 먹고 자던 시절처럼, 트럼프의 선거를 돕기 위해 자기 돈과 변호사, PR 전문가, 경영 전문가 등 인력을 투입해 가며 총력전 모드로 뛰고 있다.

머스크는 최근 보수우파 언론인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까지 말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으면, 나는 X 된 거다(I'm fxxxed)", "(해리스가 이길 경우) 내가 감옥에 몇 년이나 가 있어야 할지 누가 알겠냐".

지난 5일, 트럼프의 유세가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렸다. 석 달 전 트럼프가 귀에 총을 맞았던 바로 그 장소다. 머스크는 여기서 처음으로 트럼프의 대중 유세 무대에 직접 같이 섰다.

연설하는 트럼프 옆에서 뛰는 머스크, 10월 5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사진 : 로이터, 연합

머스크는 트럼프를 지지하다 못해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까지 보였다. 단지 '사업에 도움이 될까 봐서' 정도의 이유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오바마를 지지했다던 그는 어쩌다 이렇게 트럼프 당선을 위해 열광적으로 뛰게 됐을까?
 

오바마 편에서 반(反) 민주당 투사로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시절(2009.1~2017.1)의 머스크는 오바마 지지 성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했다기보다는, 오바마의 이상주의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자신의 사업과 방향성이 같았기 때문에 심정적 지지를 보낸 정도였다고 한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수장으로서 백악관에도 여러 차례 초청되었고 오바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다른 정치적 인물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정치자금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차원에서 민주-공화 양 진영에 조금씩 내는 정도였다.

오바마에게 스페이스X 발사장을 안내하는 머스크, 2010년 4월 케이프 커내버럴. 사진 : 나사(NASA) 아카이브

2017년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생긴다. 머스크가 공화당의 유력 의원인 케빈 맥카시에게 5만 달러의 후원금을 낸 사실이 정치자금법에 따라 공개됐는데, 이걸 갖고 민주당에서 '배신'이라며 난리를 친 것이다. 이 일 이후 '진보 세력은 정치적 발언권을 제약하려 드는 사람들'이라는 반감을 강하게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슬라 등 자기 회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세금과 규제 문제 등으로 당국과 갈등을 빚게 된 것도 머스크가 민주당과 멀어진 이유로 꼽힌다. 2010년대까지 머스크의 근거지였던 캘리포니아는 대표적인 민주당 좌파의 텃밭이다.

머스크는 2020년 자신의 집을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사했고, 2021년 말에는 테슬라의 본사를 텍사스로 옮겼다. 올해 7월에는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와 스페이스X의 본사도 텍사스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텍사스는 캘리포니아와 반대로 보수적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곳이다. 텍사스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머스크는 민주당과 더욱 멀어지게 됐다.

일론 머스크 얼굴과 X 로고. 사진 : AFP, 연합

2022년경이 되면 머스크는 극우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트위터를 인수해 X로 이름을 바꾸면서 반유대주의자와 극우파, 인종주의자, 음모론자들의 계정을 대거 복원해 줬고, 이 과정에서 트럼프의 계정도 되살려 줬다.
 

가짜 정보 퍼뜨리고 해리스 지지 운동은 막고... X 통한 트럼프 돕기

머스크는 진보좌파가 정치-사회적 담론의 플랫폼을 장악하고 자신과 같은 우파의 발언을 검열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2022년 440억 달러를 주고 트위터를 인수한 건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와 거액 소송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이었지만, 일단 인수한 이후엔 이 거대 플랫폼을 자신의 메가폰으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행동에 돌입했다.

머스크는 혐오 발언이나 극우파 음모론, 반유대주의 콘텐츠 등을 걸러내던 콘텐츠 심의팀, 선거 때 역정보나 가짜 정보를 걸러내던 팩트체크팀을 비롯해 무려 75%의 인력을 해고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발언이나 리트윗이 가장 잘 전파되도록 알고리즘을 손봤다. 팔로워가 2억 명 이상으로 세계 최대인 그는 X로 이름을 바꾼 이 플랫폼에서 우파 음모론이나 민주당 비난, 해리스 모욕 등 콘텐츠를 시도 때도 없이 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AI가 만든 가짜 콘텐츠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카멀라 해리스에게 공산주의자 옷을 입힌 아래의 가짜 이미지 같은 것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머스크의 팔로워들에게 노출된다.

카멀라 해리스를 공산주의 독재자로 묘사한 그림.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X 계정에 올렸다.

머스크는 반면, X 플랫폼상에서 해리스의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백인 녀석들(White Dudes for Harris @dudes4harris)' 계정이 정치헌금을 성공적으로 모금하자 지난 7월 이 계정을 정지시키기도 했고, 해리스 선거본부의 공식 계정 @KamalaHQ를 유저들이 팔로우하지 못하도록 한동안 차단하기도 했다.

이란이 트럼프 캠프의 정보를 해킹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해당 기사의 링크를 접속 불가 처리하고, 그 기사를 쓴 기자의 계정을 정지시킨 적도 있다.
 

처음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트럼프 측이 구애

머스크는 올해 2월 지인들에게 미국의 운명이 비관적이라며 '바이든을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할 때만 해도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었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머스크는 트럼프의 경쟁자인 플로리다 주지사 디샌티스를 밀었다. (심지어, 지금 트럼프 돕기 운동에 투입하고 있는 선거 인력도 당시 디샌티스 캠프 출신자들이다.) 당시 트럼프의 엘리트 버전으로 거론되던 디샌티스는 기독교 우파적인 이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당시 머스크는 트럼프에 대해 '석양 속으로 사라져야 할 인물'이라거나 '완벽하게 실패한 사람(stone-cold loser)'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지난 3월 공화당 대선 후보직을 공식화한 뒤에도 지인들에게 '과연 트럼프를 지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회의론을 피력한 바 있다.

당시까지를 보면, 머스크의 트럼프에 대한 태도보다 트럼프의 머스크에 대한 태도가 훨씬 우호적이었다. 트럼프는 -그의 평소 악담 취미를 고려하면- 머스크에 대해 별다른 험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함께 연단에 오르기에 앞서 흡족한 표정으로 머스크의 어깨를 두드리는 트럼프, 지난 10월 5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사진 : AP, 연합

그도 그럴 것이, 머스크는 트럼프가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것들을 다수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명성은 전직 대통령인 트럼프에 맞먹었으며 머스크의 부는 트럼프가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수준이었고, 머스크의 플랫폼(X)은 트럼프가 원했지만 갖지 못한 것이었다.

트럼프 캠프의 선거 참모들도 머스크의 지지와 후원을 간절히 바랐다. 올봄까지 트럼프는 공화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하던 갑부들의 후원을 확보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 공화당 엘리트인 니키 헤일리를 지지했고, 트럼프의 '막 나가는' 대중주의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머스크는 돈이 많을 뿐 아니라 코인 투자를 하는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캘리포니아 리버럴에 환멸을 느껴 보수우파로 전향한 테크업계 거물'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4월부터 후원 시작... 7월 '암살 시도' 때 전면에 나서

진보좌파 정권 연장을 막으려면 트럼프를 돕는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확실해진 지난 4월, 머스크는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를 오가며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갑부, 투자가, 기업가들 -넬슨 팰츠, 존 폴슨, 스티브 윈 등- 을 모아 만찬 모임을 개최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머스크의 억만장자 친구들. 헤지펀드 갑부 존 폴슨(좌), 카지노 거물 스티브 윈(우), 2024년 1월 뉴햄프셔 예비선거 당시. 사진 : 게티이미지

그런 자리들에서 머스크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 머스크의 트럼프 지원 배경을 취재한 미국 유력 매체들의 보도 내용이다.

머스크는 먼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키지 못하면 미국에서 자유선거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불법 입국자를 대거 들여와 선거권을 부여함으로써 계속 자기들을 뽑게 만들려는 음모가 진행 중인데, 올해 대선이 그것을 분쇄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업 활동 하듯이 선거운동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TV 광고와 무차별적 유권자 접촉에 돈을 뿌리는 기존의 선거운동 방식이 몹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트럼프에게 표를 줄 만한 사람을 추리고, 그들이 두 명씩 동조자를 데려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지지 기반을 확장해 가면 훨씬 효율적으로 선거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광고 없이 테슬라 판매를 성공시킨 모델을 그 사례로 들었다고 한다.

우편투표 봉투를 붙이는 24세 남성. 트럼프 지지자임을 밝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도일스타운, 지난 10월 15일. 사진 : 게티이미지

머스크는 아울러, 세를 모아 다 같이 트럼프 지지에 나서면 진보좌파의 공격으로 곤욕을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모임에 참석한 갑부들을 설득했다.

머스크는 트럼프에게 직접 돈을 주는 대신, PAC(정치행동위원회, political action committee)이라는 미국 특유의 제도를 통해 트럼프의 선거를 돕기로 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후원 내역을 덜 드러나게 할 수 있고, 지원하는 돈의 액수나 용도에 대한 법적 제한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트럼프 지원 창구는 '아메리카 PAC'이다. 이 기구를 통해 머스크는 10월 초까지 8천만 달러를 썼고, 남은 한 달 동안 최대 1억 달러를 더 써서 경합주의 트럼프 득표를 끌어 올릴 방침이다.

트럼프는 머스크의 기여를, 그가 직접 쓴 돈의 액수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머스크가 선거에 쓰는 돈이 '5억 달러'는 된다고 지인들에게 말한 바 있다.

피격 직후의 트럼프,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사진 : AP, 연합

머스크가 트럼프를 위해 이렇게 열심으로 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7월 유세 중 트럼프가 총격을 당한 사건이었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가운데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싸우자!(Fight!)"를 외치는 트럼프를 보면서, 미국이 정말 좌파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는 위기감과, 트럼프가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강인한 지도자라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는 것이다.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며 그의 당선을 위해 뛰겠다는 머스크의 X 게시물은, 트럼프가 암살 위기를 모면한 지 1시간도 안 돼서 온라인에 올라왔다.
 

머스크를 트럼프 지지자로 만든 세 가지 이슈

머스크와 트럼프가 가까워진 건, 우선은 성격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독불장군이다. 남이 자기 앞길 가로막거나 대드는 걸 견디지 못한다. 아랫사람에 대한 존중 따위는 없는 리더라는 점도 비슷하다. 여성에 대한 태도에서도 유사성이 보인다. 트럼프의 여성 편력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머스크 또한 스페이스X 등 자기 회사 여성 임원들과 성관계를 갖고 자기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한 사실이 보도됐다.

세계관적 측면에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좌파의 정치가 미국을 망치고 있으며, 지금이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것이다. 머스크는 진보좌파적 사고방식을 "정신 바이러스(woke mind virus)"라고 부른 적도 있다.

대표적인 이슈 세 가지를 꼽자면 노조/ (불법) 이민/ 트랜스젠더 문제를 들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1) 반(反) 노조로 의기 투합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내내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을 펼쳤고, 이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에 유리한 정책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왜 '바이든을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고 이를 가는 사이가 됐을까.

2021년 8월 5일,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경영진을 초청한 백악관 행사

2021년 8월 백악관에서 그 힌트가 될 만한 일이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를 만드는 자동차회사 대표들을 모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의 경영자가 참석했는데, 누가 봐도 세계 전기차의 대표 격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이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

백악관은 그 이유를 얼버무렸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에 전미자동차노조(UAW) 대표가 참석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일론 머스크는 자기 공장에 노조가 설립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워라밸' 따위 따지려면 다른 회사 가라며 자신도 일 중독자로 산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인력이나 부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공중 분해시키는 냉혈한 경영자다. (올해는 충전기 사업부 전체를 하룻밤 사이에 해고하기도 했다.)

반면 전미자동차노조는 테슬라 공장에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사측과 충돌해 왔다. 바이든은 뼛속 깊이 노조의 동지로서 정치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바이든으로서는 노동계 대표가 오는 자리에 머스크를 부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또한 해고 하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애초에 트럼프를 미국민의 스타로 만들어 준 한마디가 "당신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대사 (경영 오디션 TV 프로그램 <어프렌티스>) 아니던가.

일론 머스크와 X 플랫폼상에서 오디오 인터뷰를 하는 트럼프, 8월 12일 마러라고 리조트. 사진 : X 캡처

트럼프는 지난 8월 12일 X(옛 트위터)상에서 일론 머스크와 대담하는 가운데, 머스크가 해고를 잘 한다며 칭찬했다. 그 어감을 우리말로 살리면 이렇다.

"머스크 당신, 사람 잘 자르더구먼. 파업한다니까 가서 '잘리고 싶어? 오케이. 너희들 다 해고!'"

트럼프가 정부 효율화를 위한 감사위원회를 만들고 머스크를 책임자로 앉히겠다는 것도, 냉혈한 구조조정 전문가로서의 머스크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2)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 투표권 줘서 권력 연장할 것"

머스크는 가는 곳마다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줘서 자신들에게 투표하도록 함으로써 정권을 연장하려고 한다. 이번에 트럼프가 지면, 이제 미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는 끝'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이런 주장은 머스크뿐 아니라 미국 보수우파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데, 실제로 민주당이 장악한 일부 주들의 정책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캘리포니아 등 14개 주에서는 투표할 때 자신이 유권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보수 세력이 시장이나 시의회를 장악한 지자체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인 헌팅턴비치가 지난 3월 '투표 시 신분증 요구'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자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헌팅턴비치를 상대로 조례 무효화 소송을 냈고, 진보좌파 대표 주자인 개빈 뉴섬 주지사는 아예 소속 지자체들이 투표 시 신분증 요구 조항을 만들 수 없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진보좌파는 투표 시 신분증을 요구할 경우 저소득층, 고령층,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투표 기회를 박탈당할 우려가 있으며, 투표권이 없는 사람(이를테면 중남미 출신 불법 이민)이 다른 유권자 신분을 도용해 투표를 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는 이유로 '투표 시 신분증 요구'를 반대한다.

자기 투표용지만 넣으라는 안내문이 붙은 우편투표함, 지난 15일, 펜실베이니아. 사진 : 게티이미지

그러나 보수우파는, 민주당이 자신들에 투표할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 남쪽 국경을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관리했으며, 그렇게 쏟아져 들어온 수백만의 불법 입국자들이 선거에서 민주당에 표를 던질 거라면서 결국 공화당은 영원히 집권의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멕시코 국경 관리와 불법 입국자 문제를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로 삼고 있는 트럼프 입장에선, 이 문제를 거듭 공론화하는 머스크가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이 늘 주장하지만 유권자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던 '선거 도둑맞았다'는 주장과 불법 이민자 이슈를 결합시켜 주었으니 트럼프 입장에선 머스크가 얼마나 고맙겠나.

3) 성전환 지원 정책에 대한 반감

머스크가 테슬라에 이어 X와 스페이스X의 본사까지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전하겠다고 밝힐 때 이유로 든 것 중 하나가 성전환에 우호적인 캘리포니아의 입법이었다. (X에 대해서는 샌프란시스코의 X 본사 주위에 갱과 마약 거래상, 노숙자들이 판친다는 문제도 들었다.)

올해 7월,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는 청소년의 성전환을 돕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이는 법안에 서명했다. 남학생이 자신을 여성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하거나 여학생이 자신을 남성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할 경우 학교가 부모에게 알리도록 하는 규정을 일부 교육청이 도입하자, 캘리포니아주 법으로 해당 규정을 무효화(즉, 부모에게 알리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이다.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주의 이런 정책이 자기 회사 직원들의 가정을 위협할 거라는 점을 본사 텍사스 이전의 이유로 꼽았다.

머스크의 성전환한 자녀, 비비안 제나 윌슨(오른쪽). 사진 : NBC 뉴스 웹사이트 캡처

사실, 머스크는 이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 자신의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여성적 특성을 보이더니 결국 18세 되던 해인 2022년에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고 이름도 개명 소송을 통해 비비안 제나 윌슨(Vivian Jenna Wilson)으로 바꾸면서 아버지 머스크와 연을 끊은 것이다.

그런 머스크에게, 올 7월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법안 서명은 진보주의자들이 '마지막 선을 넘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머스크 본인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는 표현을 썼다.)

트럼프 또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머스크와 비슷하다. 트럼프는 동성애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입장이다. 애초에 뉴욕 출신으로 성문화에 개방적인 데다, 자신의 지인이나 사업상 도움을 준 사람 중에서도 동성애자가 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괴롭히고 싶은 사람의 동성애 사실을 폭로한 적은 있다.)

트럼프는 그러나 타고난 성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성전환에 대해서, 특히 성전환 치료를 건강복지 차원에서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보여왔다. 그의 공약집 <어젠다 47>에도 동성애와 성전환에 대한 이런 인식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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