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검찰청 폐지' 역사의 첫 페이지에 나올 그 이름 석자

박세열 기자 2024. 10. 1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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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김건희의 '흡성대법'과 검찰의 '주화입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장하는 사파가 등장하자 중원의 주인을 자처하던 무림세가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내걸고 일제히 일어나 사파 세력에 결연하게 맞섰다. 두 세력이 피터지는 싸움을 벌인 결과 '검수원복' 세력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렇게 군웅할거 시대가 지나고 수사권을 되찾은 검사들이 최고 권력을 획득하며 중원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런데 '검수원복'의 시대에 검사들의 수사 내공이 궤멸적 타격을 입는 원인 모를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형지독을 집단으로 삼킨 것 같은 이 현상을 두고 조선제일검이라 불리던 사내는 뭔가 잘못됨을 감지했는지 '국민 눈높이'라는 신공을 꺼내들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모펀드 수사에서 시작해 피의자 딸의 대학교 표창장까지 뻗어나가던 검찰의 수사 내공이, 갑자기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기소를 못할 수준으로 내상을 입은 걸 설명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 눈높이' 신공을 꺼내 든 조선제일검은 두어번의 초식만을 휘둘렀을 뿐인데, 보이지 않는 적의 '암기'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중이다.

도이치 주가 조작 사건의 '김건희 불기소' 결론을 보면서 법무부장관 한동훈의 '검수원복'을 떠올렸다. 국회 입법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와 '경제' 범죄로 축소했지만 법무부는 그간 하위 법령과 규칙을 개정하는 꼼수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원상복구'시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전방위로 수사했던 검사들의 그 '능력'이 '검수원복' 이후 오히려 눈에 게 무력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검찰이 도이치 주가 조작 사건 수사를 시작하자 범행의 핵심 인물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40차례나 연락을 주고 받았다. 검찰은 도이치 주가조작 범인들과 관련자들의 주거지, 사무실 등 73곳을 압수수색했다. '김건희 명의' 계좌가 주가 조작에 48차례나 활용된 게 드러났다. 김건희와 증권사 담당자, 주포가 마치 짠 듯이 주식 거래를 해 왔다는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록도 확보돼 있다. 2010년 10월 28일 주가조작 주포가 "12시에 3300에 8만개 때려달라고 해주셈"이라고 하자 7초 후에 '김건희 명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3300원에 8만주 매도 주문이 나왔다. 검사는 "당시 김건희 여사 명의 대신증권 계좌는 김건희 여사가 영업 단말로 증권사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서 낸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주가조작 세력과 김건희 전 대표 사이에 의사 연락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법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해 왔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모든 게 우연'이라는 피의자 김건희의 거의 모든 주장을 그대로 믿어 줬다. "피의자는 주식 관련 지식, 전문성, 경험 등이 부족하고, 시세조종 관련 전력이 없는 점, 상장사 대표인 권오수를 믿고 초기부터 회사 주식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것인 점 등을 고려하면, 권오수가 시세 조종 범행을 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도 인식 또는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검사들은 마치 김건희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처럼 굴었다.

압권은 검찰이 꾸렸다는 레드팀이다. 보통 '레드팀'은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기에 앞서 피의자 변호인의 입장에서 검찰의 수사 점을 점검하는 의미다. 그런데 이번 레드팀은 특별하다. 검찰이 '불기소' 결론을 내리고 레드팀이 '기소하자'는 의견을 내는 방식이다. 검사들이 변호사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애초에 '도이치 주가 조작 사건'만 4년 반 동안 다뤘던 수사팀이 '무혐의'를 역설하는데 관련 수사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레드팀'이 결론을 바꿀 수 있었을까? 피의자 김건희의 무혐의 입증에 유리한 자료들을 레드팀 앞에서 PPT 돌리며 열정적으로 '불기소 이유'를 설명하는 수사팀 검사들의 모습은, 의뢰인의 무혐의를 입증하려는 '서울중앙로펌' 회의실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피의자의 무혐의를 위해 레드팀을 운영한다는 건 과문해서인지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보통은 '기소'를 위해 변호인과 피의자의 주장을 논파하려는 목적으로 '레드팀'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일반 회사도 조직의 설립 목적(매출)을 위해 자원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레드팀'을 운영하지, 그 반대의 이유로 레드팀을 운영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검수원복'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성과를 갈아 엎었을 때, 사람들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 수사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전부 이렇게 하겠다고 하다면, 검찰 수사권은 없애는 게 맞았다. 현직 법무부장관을 압수수색하면서 '검찰 수사권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몸부림치던 검사들이 특정인을 위한 '로펌'이 되어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대체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검찰은 독점적 기소권과 그 기소권에 복무하는 수사권으로 지금 '판사'의 흉내를 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1년 3월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부정부패 대응은 적법 절차와 방어권 보장, 공판중심주의라는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재판의 준비 과정인 수사와 법정에서 재판 활동이 유기적으로 일체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권오수와 김건희 사이에 의사 연락이 있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하던 검찰은 이제 와서 "미필적으로도 인식 또는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사와 재판 활동이 유기적으로 일체되지도 않은 '검수원복'이다. 윤 대통령은 "중수청 신설은 민주주의 퇴보이자 형사사법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 "부패완판"이라고 했다. 지금 형사사법시스템을 파괴하는 건 누구이고, '부패완판'은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검찰 수사권을 없애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한번 수사 능력을 잃어버린 검사들이 어떻게 다시 수사에 나설 수 있겠는가. '무혐의 전문기관'이 될 거라면 기소권을 없애도 될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끝난 후 다음 정권이 검찰 수사권을 없애겠다고 하면, 검사들은 또다시 벌떼처럼 들고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그때엔 아무도 검사들의 입장에 서 있지 않을 것이다. 수사권을 줬는데도 무림의 비급을 연마하다 스스로 '무형지독'을 섭취하고 '주화입마'에 빠져버린 검사들을 편들 사람은 없다. 조선제일검은 무림의 화를 불러온 죄를 깨고 쓸쓸히 퇴장할 것이며, 어느날 '김건희'라는 이름의 고수가 마교의 비밀 교주로 활동하며 흡성대법으로 검찰문파를 없애고 중수청과 기소청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올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이 취임 초 순방을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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