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하우스 없는 오페라계, 손태진·고우림 놔줄 수밖에 없죠"

유주현 2024. 10. 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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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세계 무대 데뷔 50주년 맞은 ‘원조 K클래식’ 필립 강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백스테이지. 22년간 영국 로열오페라를 이끌다 최근 런던심포니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겨 첫 아시아투어 무대를 마친 마에스트로 안토니오 파파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청년 시절 스승으로 모신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베이스 필립 강(강병운)을 십여 년 만에 해후했기 때문이다. 영국인과 한국인이 얼싸안고 속사포 독일어로 안부를 나누는 광경이 아름다웠다.

“바이로이트에서 토니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피아노 반주를 정말 잘해줬거든요. 두꺼운 오페라 스코어를 통째로 외우면서도 바렌보임의 두 아들을 베이비시터처럼 돌봤죠. 천재들이 그렇게 착하다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아버지
동양인 최초로 베를린 오페라하우스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입성했던 베이스 강병운이 세계무대 데뷔 50주년을 맞아 11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성악계 발전을 위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연다. 김상선 기자
베이스 강병운의 목소리도 한껏 들떴다. ‘베이스’. 인간의 성부 중 가장 낮은 소리다. 그 가장 낮은 소리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 그다. 1974년 동양인 최초로 베를린 오페라하우스에 입단, 88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입성 등 오페라계에서 ‘동양인 최초’ 타이틀을 모조리 휩쓴 ‘원조 K성악가’다. 이후 유럽에 진출한 한국인 성악가는 많지만, 오페라 레퍼토리에서 한 배역의 ‘0순위’로 인정받은 건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조수미 말고는 바이로이트에서 ‘링사이클’의 하겐 역을 10년간 도맡은 강병운 밖에 없다.

그가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세계 무대 데뷔 50주년을 기념한 ‘필립 강과 다시 쓰는 오페라 르네상스’(11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다. 서울대 교수로 오래 재직했지만, 한국 무대에 선 것은 1989년 서울국제음악제와 97년 바이로이트 내한 갈라, 2013년 국립오페라단 ‘돈 카를로’ 출연이 전부다. 이번 공연이 몹시 진귀한 이유다. 최희준의 지휘로 바리톤 고성현·강형규·유동직, 테너 하석배·김재형·정호윤, 소프라노 박미혜·서선영 등 ‘월클’ 성악가 8명을 이끌고 공연의 막을 여닫는 것이 그다.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아리아 ‘찢어질 듯 아픈 영혼’, 바리톤 고성현과 돈 카를로 듀엣 등 총 3곡을 부른다. 현역 때도 고사하던 한국 무대를 이제 와서 직접 꾸리는 이유가 뭘까.

Q : 50주년 공연을 직접 기획하셨습니다.
A : “내가 주최하고 후배들이 재능 협찬하는 거죠. 준비하다 보니 50주년이 됐을 뿐, 내 50주년은 중요하지 않아요. 성악계가 힘들거든요. 좋은 가수가 너무 많은데 수용할 시스템이 없잖아요. 20년 이상 유럽 오페라하우스에서 활동한 후배들을 캐스팅했어요. 그런 이력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독창회를 열기도 힘들거든요. 유럽 시스템으로 가야 산적한 자원을 수용할 수 있을 텐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제일 먼저 유학 간 사람으로서 내가 나서는 겁니다.”

Q : 출연진이 쟁쟁한데요.
A : “오페라하우스가 생기려면 성악계가 뭔가 보여줘야 하잖아요. 50년 전에 시작된 ‘월드클래스’의 성과를 보여주고자 최고의 가수들만 골랐죠. 어떻게 모았냐고 하던데, 전화 한 통씩 했을 뿐이에요. 단 한 명도 거절한 사람이 없어요. 성악계 발전을 위해서 힘을 모아준 거죠. 사실 오케스트라 편성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준비가 힘들거든요. 이번에 잘 끝나서 스폰서가 생기면, 그 다음 세대도 섞어서 시리즈로 이어갈 겁니다.”

Q : 그간 한국 무대는 멀리하셨는데요.
A : “한창 때는 해외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죠. 가곡 콘서트 권유는 많이 들었지만, 가곡 잘 부르는 후배는 많잖아요. 나같이 바그너 오페라 하던 사람이 가곡의 밤 하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60년대로 돌아가는 셈이죠. 성악계를 위해 헌신한다는 명분으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시작하는 겁니다.”

Q : 오랜만의 무대가 떨리진 않으세요.
A : “50년 동안 해온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유럽에서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왔잖아요. 오페라만 하다가 독창곡을 하게 됐지만, 내가 가장 많이 불렀던 ‘돈카를로’ 필립의 아리아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네’는 안 부릅니다. 전화 한통에 달려와 준 후배들이 있는데 10분 이상 되는 곡을 나 혼자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혹시 앵콜이 나오면 또 모르죠. 마지막 3분의 1만 부를 수도 있으니, 브라보를 외쳐주세요.(웃음)”
지난 1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함께 활동했던 런던심포니 상임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왼쪽)와 해후했다. 유주현 기자
필립의 아리아는 특별한 곡이다. 69년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남성 성악 최초로 전체 대상을 받을 때도, 74년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 입단 때도, 81년 이탈리아 돈카를로 콩쿠르 우승 때도 불렀다. 우승 후 필립 역으로 이탈리아 무대에 데뷔하면서 ‘라스칼라 극장의 주역 보리스 크리스토프의 음악성과 로시 레메닌의 연기력을 합친 것 같다’는 현지 언론의 극찬이 이어지자 지휘자의 권유로 아예 이름을 ‘필립’으로 바꿨다. 그 뒤로는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대스타들과의 공연이 당연해졌다.

Q : 50년 전 유럽엔 동양인이 드물었겠죠.
A : “처음 베를린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갈 때 경비가 길을 막더군요. 리허설 하러 왔다고 하니 당신이 무슨 리허설을 하냐고 해요. 계약서를 보여주니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고서야 사과를 받았죠. 인지도를 얻기까지 3년쯤 걸렸지만, 알려지고 나선 공공기관에 서류 떼러 가도 환영받았어요. 그만큼 오페라 가수가 존경 받는 직업이니까요.”

Q : 바이로이트에서도 처음부터 주역을 맡으셨죠.
A : “바이로이트 전성기였고, 바렌보임·제임스 레바인·시노폴리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가수들을 가족처럼 데리고 다니던 시절이죠. 내가 비스바덴 극장의 바그너 공연에 대타로 섰을 때 바그너 손자가 와서 보고 오디션에 초대한 거예요. 바렌보임이 오디션에서 나를 곧바로 주역으로 발탁해 줬고, 그 그룹에 들어가니 어렵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운이 좋았죠.”
당시 독일 최고 권위의 베를린 모르겐포스트지는 그를 두고 ‘바그너 오페라를 벨칸토로 부른 올해 최고의 가수’라고 평했다. 목청이나 성량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정말 멋들어지게 부른다는 뜻이다.

K오페라 르네상스 이룰 시스템 필수

Q : 너무 승승장구만 하셨네요.
A : “우린 하루살이거든요. 다섯 번 브라보를 받아도 한번만 삐끗 하면 잘립니다. 그러니 매 공연이 중요하고, 새 곡을 받았을 때 누구보다도 빨리 공부해 오느냐의 문제예요. 바이로이트에서도 5년 짜리 프로덕션에 끝까지 남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평이 좀 안 좋으면 바로 교체가 되죠. 오페라 하우스도 마찬가지예요. 극장에서 요구하는 걸 해오지 못하면 바로 다른 사람을 찾기 시작하는 시스템이니, 잠시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현역 시절 플라시도 도밍고(왼쪽)와 리허설 중인 강병운. [사진 강병운]
‘동굴저음’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는 살면서 들어본 가장 울림 있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과연 ‘악기’가 달랐다. “성악은 자기 악기를 절반만 쓰고 절반은 감정과 기교로 합니다. 그러려면 호흡이 중요하죠. 바이올린도 소리를 잘 내려면 비브라토가 좋아야 하는 것처럼, 성악도 그런 한두 가지 비법이 있어요. 나는 스승인 마리오 델 모나코, 티토 곱비에게 힘주지 말고 부르라고 배웠어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마스께라(Maschera, 이탈리아어로 ‘가면, 얼굴’이라는 뜻)’, 그 다음에 노래하라고. 일단 소리가 얼굴에 붙어야 된다는 뜻이에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아버지다. 막내를 빼고 온 가족이 클래식 음악가 집안이라니, 사고방식도 고전적일 것 같다. 웬걸, 셀린 디옹 뺨치게 노래하는 주미 강이 어린 시절 연습을 게을리하자 진지하게 대중가수가 되라고 권했을 정도로 오픈 마인드다. 초창기 성악계가 꽤 우려했던 JTBC ‘팬텀싱어’를 보며 제자인 손태진과 고우림에게 투표하라는 문자를 지인들에게 뿌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내가 반대의 선봉장이라 생각하겠죠. 나는 가요나 가곡, 팝송도 모르는 사람이긴 해요. 노래방에도 가본 적 없고, 트로트는 태진이가 부른 곡밖에 모르죠.(웃음) 태진이나 우림이가 좋은 제자들이지만 오페라하우스도 없는 나라에서 오페라만 하라고 고집할 수 있나요. 이왕 나간 거 1등 하라고 했습니다. 태진이는 우승하고 울면서 전화를 했더군요.”

Q : ‘K오페라 르네상스’를 꿈꾸시는데요.
A : “옛날엔 마리아 칼라스나 마리오 델 모나코가 일본에 왔다가 한국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이젠 달라졌어요. 음악의 메인 시티인 링컨센터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필, 줄리어드가 있는 것처럼, 음악이 발전하려면 우리도 한국의 링컨센터를 만들어야 돼요. 그중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포함한 오페라 하우스가 제일 중요해요. 한국인들을 돈 들여 외국에 보낼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죠. 그래야 한국이 주류가 될 수 있어요.”
런던심포니 파파노가 첫 아시아 투어의 포문을 연 것도 대한민국 세종문화회관이었으니, K오페라 르네상스가 헛된 꿈은 아닌 것 같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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