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기고] 흑백요리사를 보며 드는 우리나라 ‘안전문화’에 대한 단상
[마이데일리 = 신용승 기자] 최근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유명한 스타 셰프와 재야의 요리 고수들이 기상천외한 규칙 아래 요리 서바이벌 대결을 펼치는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요리와 개성 있는 출연자들의 여러 서사가 많은 애청자를 양산했다.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 셰프들을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다는 시청 소감도 많았다.
한때 우리네 안방극장을 유명 셰프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적이 있다. 본업인 요리 실력은 기본이요, 멋진 외모와 수려한 언변 등 예능감까지 갖춘 셰프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들의 본업인 총괄 셰프로서 주방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 또한 종종 방송에서 보여졌다.
헌데 주방에서 그들의 모습은 예능에서의 훈훈함과는 사뭇 달랐던 기억이 난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후배 직원들에 대해 언성을 높이며 엄격하게 다그치는 장면이 여과없이 전파를 탔다. 다소 놀라웠으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뜨거운 불과 기름, 날카로운 칼 등이 즐비한 주방 내 실수는 큰 사고로 직결되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총괄 셰프로서의 민감함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엄격하고 긴장된 분위기. 그것이 바로 주방에서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그들이 확립한 ‘안전문화’일 것이다.
‘안전문화(Safety Culture)’란 안전제일의 가치관이 개인 또는 조직구성원 각자에 충만돼 개인의 생활이나 조직의 활동 속에서 의식, 관행이 안전으로 체질화된 상태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 태도 등 총체적인 의미를 지칭한다.
안전문화는 크게 세 가지 단계로 구분된다. 먼저 법규로서 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강제하는 도입기 단계, 둘째로 사업장에서 노사 스스로가 위험을 발굴하는 도약기 단계, 셋째로 산업재해 예방활동이 사업장의 문화로 정착된 성숙기 단계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우리나라의 안전문화 수준은 도약기 단계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아직까지 산업현장에서의 자율적인 산업재해예방활동이 문화로서 정착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자 수는 총 13만6796명으로 1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 수 또한 매년 800명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는 가파른 고도성장으로 각종 지표상 전세계 10위권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경제 분야의 성취라든지, K-POP·K-드라마에 이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 K-컬처로 대표되는 문화 예술 분야의 성취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다단계 도급·플랫폼 산업 등 산업구조의 변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대표되는 취업구조의 변화 등 산업현장은 나날이 다변화되고 있다. 법규 준수 등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강제하는 방식만으로는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제 산업현장의 안전문화 수준을 성숙기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 사업장에서의 산업재해 예방활동이 사업주에게는 ‘비용이 드는 것’, 근로자에게는 ‘귀찮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돼야 한다. 자율적인 산업재해 예방활동이 문화로서 정착돼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말이 있다. 조금 미흡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타협하고 굳이 서로 얼굴을 붉히지 말자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허나 이와 같은 말이 산업현장에서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유명 셰프들이 주방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방송국 카메라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고 날카롭게 행동해야만 했던 것처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일터에서의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가 엄격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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