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 얇고 깊은 간극의 풍경화…이자운, 개인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 우리는 우리 주위를 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우리가 보는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결코 한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고그 둘의 인과관계는 참으로 불분명하다….그래서 나는 지질학자가 관찰대상의 기원과 진화의 과정을 알기위해 thin section(박편, 얇은 단면(암석이나 광물에 빛을 투과시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약 0.03mm 두께로 자른 얇은 조각)을 준비하듯이, 아마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지층 어딘가에 묻혀 있을, 나의 인식의 지점에서 일어나는 풍경의 한 단면을 잘라서 자세히 들여다 본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한다."(작가 이자운)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LVS에서 이자운(Zaun)의 8년 만의 국내 개인전 '___ thin section'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자운은 전시명 ‘thin section’에 대해 ‘박편, 얇은 단면 : 암석이나 광물에 빛을 투과시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약 0.03mm 두께로 자른 얇은 조각’ 라는 각주를 달아 설명한다. 지질학자가 대상을 깊이 연구하기위해 가장 작은 조각인 박편을 준비하여 탐구를 시작하는 것처럼, 여러 개의 지층으로 쌓인 삶의 연대에서 인식되는 하나의 풍경의 가장 작은 조각을 관찰하며 시작되는 작업 방식을 의미한다.
이자운은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지만 동경했던 순수 예술에 대해 깊이 탐구하기 위해 뉴욕 알프레드 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여 우등 졸업했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뉴욕, 런던,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전시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전시의 일부였던 이자운의 인터뷰가 유일하게 기사에 실리면서 주목 받았다.
네이랜드 블레이크(Nayland Blake)의 'Got an Art Problem?(예술 문제가 있습니까?)'이라는 퍼포먼스는 휘트니 뮤지엄의 3층에서 예술가, 뮤지엄 직원,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인터뷰에서 이자운은 학교 수학여행으로 우연히 방문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불, 루이즈 부르주아 등의 설치 작품에 감명받아 ‘이런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한 예술 거장들의 특별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들에 깊은 공감을 했다. 이 후 한국에서 많은 응원을 받지 못한 순수예술 대신 상업 마케팅에 필요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던 선택지에서 다시 돌아와 인지하고 사유하는 예술 철학에 전념했다.
이자운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드(grid)에 대해, 작가는 20세기의 것이었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드는 작가가 거주하고 활동하는 뉴욕, 런던 등의 대도시를 이루는 거대한 지도이자 몇 세기를 거쳐 움직이지 않는 공간과 그 위에 올려지고 철거되는 건축물들이 쌓은 시간을 통합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번 전시 작품은 이자운의 작업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양한 재료가 ‘thin section’ 시리즈를 이룬다. 동판에 다양한 형태의 블록을 조각하고 여러 수채물감 색으로 찍는다. 모눈 종이 위에 실크를 덧댄 순지를 올려 정교하게 블록 모양을 겹치듯 콜라주한다. 제각기 다른 색의 블록들은 순지 위에 교차되고 겹쳐진다. 모눈종이를 기준으로 붙여지는 블록들은 오차 없이 정교하지만 콜라주를 이루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듯 분산된다. 어떤 블록과 블록 사이는 컷아웃으로 텅 빈 공간을 연출했다.
모눈 종이에 그려진 블록들은 눈에 보이는 작은 크기로 콜라주 되어있지만, 마치 거대한 건축물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 같다. 세포만큼 작은 물질 하나 하나를 면밀히 관찰하며 분석하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창작자만의 설계도와 같이,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그린다.
""보는 것"과"아는 것" 사이의 너무나 얇고도 깊은 간극은 나에게는 항상신비한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이 "보는 행위"와 그리고 그 "아는 행위", 두 지점의 거리 사이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를 풍경을 그린다. 혹은 조금 더 간단히, 나는 우리의 인식의 지점에서 일어나는 모습의 풍경화를 그린다,라고도 한다."(이자운 작가)
공간에 지배 당하는 시간, 시간에 지배 당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를 작은 조각 하나를 찍어내며 이어 붙이는 행위는 '무쓸모'의 예술의 무한을 보여준다.
비슷하지만 저마다 다른 모양, 겹쳐진 블록들과 사이가 텅 빈 블록들, 한 땀 한 땀 수 놓인 블록을 가로지르는 실이 닿는 곳은 블록이 아닌 종이의 끝이다. 경직과 유연을 넘나드는 끝없는 작업, 작가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의지를 보여준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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