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흑백요리사 '에드워드 리'와 노벨문학상 '한강'

2024. 10. 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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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빠른 성공비법 원하지만
중요한건 진정성 담긴 꾸준함
시행착오 겪어야 성공도 맛봐
흔들리지 말고 나만의 길 걷길

최근 문화계에서 가장 화두가 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와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일 것이다. 나도 '흑백요리사'를 한참 재밌게 보던 중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다. 20대 내내 동경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게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흑백요리사'의 에드워드 리 같은 오랜 경력의 셰프를 보며 느꼈던 것과 한강 소설가의 수상 소식에서 든 생각이 묘하게 들어맞았다.

그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 있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근래는 빠르게 성공하는 비법, 남들을 추월하는 마케팅의 기술, 수십만 인플루언서가 되기 등이 넘치는 시대다. 수많은 이들이 인생에 손쉬운 지름길이 있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 모든 잔기술 같은 것들은 진정성 있게 사는 삶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20년이건 30년이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최선의 마음으로 몰두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모두가 유명 셰프가 되거나 노벨상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갖게 되고, 자기만의 성취를 얻게 된다. 빠른 성공과 관심을 얻는 요행과 지름길을 택하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자기만의 삶을 구축하는 일이다.

삶은 한 번뿐이고 우리가 쓴 시간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삶을 베팅한다. 그럴 때 어떻게든 타인의 성급한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는 진정성 있게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실력과 능력을 쌓아가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베팅'이다. 중요한 건 충분한 시간, 꾸준함, 몰입, 그리고 진정성이다.

타인의 관심이라는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반짝 받고 있는 많은 인플루언서 중 상당수는 10년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는 그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주목받는 셰프도 나중에는 관심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성 있게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쌓아올린 그 내면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어디서든 자기만의 요리를 하고,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는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열다섯 살에 작가가 되기를 꿈꾼 이후로 부단히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처음에는 소설가가 되려고 했으나 수많은 공모전 낙선과 시행착오 끝에 어느덧 인문학 책을 쓰게 되었다. 이후에는 대학원에도 가보았고, 기자가 되려고 취업 준비도 부지런히 했다. 그러다 모든 실행착오들을 거쳐 최근엔 에세이와 문화평론을 쓰며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다. 많은 실패와 변화 속에서 나름대로 글쓰기만큼은 이어오려고 애썼다.

"실험적인 일을 할 때 다 성공하지 않길 바라요. 그러면 재미없을 거예요. 실험을 하는 이유는 어떤 게 잘 안 되는지 보기 위한 것도 있으니까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면 당연히 실패도 할 거예요."

에드워드 리는 예스세프(YesChef) 다큐멘터리에서 이같이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진정성 있게 하고자 한다면 계속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는 잘못이 아니다. 실패했다는 건 시도했다는 뜻이고, 위험을 감수했다는 뜻이며, 그렇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것'을 찾아나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여정을 오랫동안 걸어간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만난다. 그 여정이 모두 거대한 강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이어가는 실개천 같은 길에서도 자기만의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나만의 실개천으로 이어지는 나의 삶을 살고자 부단히 애쓰고 싶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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