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익의 모서리] 스타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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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연차 기자에게 중요한 '워딩을 잘 받아 치는 일' 정도는 이제 인공지능(AI)에 시키는 게 더 정확하고 빠른 시대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AI 대신 기자가 직접 워딩을 받아 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 사건이 있었다.
그보다는 하니라는 스타의 화제성을 이용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근로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아야 할지 논의해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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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연차 기자에게 중요한 '워딩을 잘 받아 치는 일' 정도는 이제 인공지능(AI)에 시키는 게 더 정확하고 빠른 시대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AI 대신 기자가 직접 워딩을 받아 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의 등장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뜬겁새로(뜬금없다의 하니식 표현)' 나선 하니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화젯거리였다.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인기 스타의 등장에 정치부 소속이 아닌 기자들도 국회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에 접속했고, 유튜브 중계에도 팬들이 앞다퉈 몰렸다. 어쩌다 보니 하니의 옆이나 뒤에 앉은 이들은 '그림체' 자체가 다르다며 본의 아닌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이에 있었던 갈등에 대해 질문하자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아 갈등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갸웃거리는 하니의 답변 장면은 연극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보다 조금 더 진지해진 논의도 있었다. 국회로 입장하는 하니의 사진을 찍기 위해 쪼그려 앉는 것까지 불사했던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공사(公私) 구분을 하지 못한다며 핀잔을 들어야 했고,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은 노동자 사망 사고로 국감에 불려 나왔음에도 하니와 미소 셀카를 찍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민생을 살리고 정책 논의에 집중해야 하는 국정감사 현장을 팬 미팅 장소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은 당연히 귀담아들을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하니의 등장을 단순히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넘기는 것도, 현장에서 의원들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일에만 골몰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최 위원장과 하니의 만남을 언급할 수는 있지만 이를 두고 여야가 다투다 정회까지 한 것은 시간이 한정된 국정감사에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그보다는 하니라는 스타의 화제성을 이용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근로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아야 할지 논의해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난해에만 52억원을 정산받은 유명 연예인을 근로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도, 실제 괴롭힘을 당했는지 애매하다는 시각도 있다. 애초에 근로계약 대신 위임계약을 맺고 회사와 일정 비율로 수익을 나누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못 본 척 무시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괴롭힘으로 벌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전통적인 생산·사무·서비스 업무의 형태가 바뀌고 있고, 특정 회사가 아닌 플랫폼이 연결해주는 방식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있기에 다양한 직업에 대한 시각과 범위를 따져볼 기회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처럼 등장만으로 화제가 될 만큼 인지도가 높은 스타들이 이런 문제를 공론화해준다면 사회 전체가 함께 논의해보기도 한결 쉬워진다. 환경이나 노동권, 인권 문제에 대해 기회가 될 때마다 목소리를 내는 스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미국 할리우드에서만의 일은 아니지 않나. 원래 '스타'라는 말 자체가 닿기는 힘들지만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별과 닮았다는 점에서 유래한 표현이고, 길을 떠난 사람들은 별을 보여 나아갈 방향을 정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이제 스타들의 사용설명서를 진지하게 작성해볼 때도 됐다.
[이용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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