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너무 먹고 싶을 땐 반개 끓여 두세 젓가락만 맛봐” K리그 통산 24번째 400경기 대기록 한지호의 이야기 [이근승의 믹스트존]
한지호(35·부천 FC)는 2010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부산에서만 231경기에 출전해 26골 15도움을 기록했다. 2020시즌 전반기까진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곤 부산에서만 뛰었다. 한지호의 이름 앞에 ‘부산 원클럽맨’이란 수식어가 붙었던 건 이 때문이다.
한지호는 2020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부산을 떠나 경남 FC로 향했다. 2019시즌 부산 주장 완장을 차고 팀 승격을 이끌었지만 새 시즌엔 출전 기회를 잡는 데 애를 먹었던 까닭이다.
경남에서 6개월을 보낸 한지호에게 부천 이영민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한지호는 부천에서 이 감독의 굳건한 신뢰 속 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한지호는 부천에서만 101경기에 출전해 14골 10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1983년 출범한 K리그 통산 24번째로 400경기 출전 대기록을 달성했다. 한지호는 올 시즌 K리그2 24경기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부천의 승격 도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K리그 통산 401경기에서 52골 35도움을 기록 중인 ‘숨은 전설’ 한지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도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제가 K리그 역사에서 24번째로 400경기 출전 기록을 작성했더라고요. 영광스럽습니다. 400경기란 대기록을 작성하는 순간 지금까지 저를 지도해주셨던 감독님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제게 신뢰를 보내주시고 출전 기회를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Q. 2010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그때 14년 이상 프로 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상상조차 못했죠. 당시엔 프로에 입문하는 것만으로 꿈같은 일이었으니까. 일단 프로에 입문해서 뛰고 싶은 생각뿐이었어요. 당시엔 30대 중반 선수가 흔치 않기도 했습니다. 34살 정도 되면 은퇴하는 게 일반적이었죠. 그런 다짐은 했어요. ‘프로에 입문했으니 34살까진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그 목표 이상의 성과를 낸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Q.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부천에서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고 있잖아요. 오랫동안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려면 몸 관리가 기본인데요. 한지호만의 몸 관리 비법이 있습니까.
제가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관리하는 건 없을 겁니다.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해요. 훈련장에서부터 100%를 쏟아내려고 하죠.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도 100%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쓰고요. 경기력에 지장을 줄만 한 건 절대 하지 않습니다. 훈련이나 경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일상입니다.
Q. 자신만의 특별한 식단도 있습니까.
잘 챙겨 먹고 푹 자는 게 정말 중요하죠. 대단히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거예요. 저는 영양 보충에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하잖아요(웃음). 밥은 꼭 챙겨 먹습니다. 떡볶이나 라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걸 식사로 하진 않아요. 라면이 정말 먹고 싶을 땐 반개 정도 끓여서 두세 젓가락 맛만 봅니다.
Q. 그 맛있는 라면을 반 개만 끓여서 두세 젓가락만 맛본다라... 프로에서 400경기 이상을 뛴 이유를 알겠네요. 수면 시간은 정해두는 편입니까.
아침형 인간이라고 하죠? 제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은 아니에요. 대신 하루 7시간 이상은 꼭 잡니다. 7시간은 자야 몸 상태가 확실히 좋거든요. 참 신기한 게 8시간 이상을 자면 몸이 또 안 좋습니다.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랄까. 매일 7시간~7시간 30분 정도를 자는 것 같습니다.
‘역대급 더위’란 표현이 가장 정확한 것 같아요. 여름마다 선수들에게 ‘몸 관리 잘해야 한다’는 얘길 많이 했어요. 올해는 후배들에게 “선수 생활하면서 제일 덥다”고 했습니다. 올여름 제일 많이 쓴 표현이 “날씨 진짜 미쳤다”가 아닌가 싶어요. 올여름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감사함이죠. 부산은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입니다. 부산이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제게 부산은 평생 감사한 팀입니다.
Q. 그 부산과 2020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완전히 이별하게 됩니다. 경남 FC로 향한 건데요. 2010년 부산 입단 후 군 복무 시절 제외 팀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부산과 이별의 순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말씀 주신 대로 2020년 여름 이적 시장이었죠.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산에서 오래 했잖아요. 팬들이 제게 ‘부산 원클럽맨’이라고 해주셨습니다. 자부심이 있었죠. 아내와 매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한 것 같아요. 어찌해야 하나. 제가 선수잖아요. 선수는 뛰어야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거든요. 그라운드 위에서 제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부산과 헤어진다는 게 너무 아쉬웠지만,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요한 결정이지 않았나 싶어요.
Q. 경남에서 6개월을 보낸 뒤 2021시즌 한지호의 축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팀을 만납니다. 부천인데요. 부천 유니폼을 입고 101경기에 출전 중입니다. 한 팀에서 100경기 뛰는 것도 쉽지 않은데 두 팀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 중입니다.
부천도 부산만큼 감사한 팀이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이영민 감독님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동료들, 프런트, 팬 모두에게 감사해요.
Q. 부천의 바람은 확실합니다. K리그1 승격입니다. 한지호는 2019시즌 부산 주장으로 K리그1 승격을 이끈 적이 있습니다. 그때를 돌아봤을 때 K리그1 승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선수만 프로축구단 구성원이 아닙니다. 감독님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선수들, 프런트, 팬 모두가 부천이란 팀을 구성하고 있죠. 한 시즌 동안 승격을 향해 얼마만큼 준비하고 나아가느냐가 성패를 좌우하지 않나 싶어요. 부산 시절을 돌아보면 2019시즌에만 승격을 향해 나아갔던 게 아닙니다. K리그2로 강등된 순간부터 매 시즌 승격을 향해 나아갔어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아깝게 떨어져도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나아가야 하니까.
Q. 부천도 매 시즌 승격을 향해 나아가고 있잖아요. 후배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게 있습니까.
후배들에게 여러 번 얘기한 건데요. 선수단 미팅 때 후배들에게 “우린 K리그2에 만족하기 위해 존재하는 팀이 아니다. 부천은 K리그1으로 올라가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은 K리그1으로 올라가는 과정이다. 더 절실해야 한다. K리그1으로 올라가면 팀뿐 아니라 선수에게도 좋다. 미디어의 관심, 자신의 가치 등 모든 게 지금보다 훨씬 올라간다. 그러니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한마음 한뜻으로 꼭 승격이란 걸 이뤄내 보자”고 합니다.
기억하죠(웃음).
Q. 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골키퍼 장갑까지 꼈습니다. K리그는 물론 세계 모든 리그에서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그때 그 경기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부천 이적 첫해였죠. 경기력은 준수했는데 골이 안 들어가던 때였습니다. 공격 포인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 있던 중 프리킥에서 골이 나왔어요. 안산에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은 트로트 가수가 된 (전)종혁이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겁니다. 그때 끝나고 종혁이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전반전에 옐로카드를 받았던 걸 모르고 시간지연으로 한 장을 더 받은 거예요.
팀이 교체 카드를 다 쓴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골키퍼 장갑을 낄 것이라곤 생각 안 했어요. 키가 큰 수비수에게 장갑을 끼우지 않을까 했죠. 반대편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코칭스태프에서 저를 급히 부르는 거예요. 갔죠. ‘네가 골키퍼 좀 해주라고’고 하시는 겁니다. 했죠(웃음).
Q. 프로에서 400경기 이상 뛰면서 유일하게 골키퍼 장갑을 껴 본 경기입니다. 자신 있었습니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 있었어요(웃음). 골키퍼를 시키시는 게 싫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부담스러웠겠지만 조금만 버티면 되는 때였거든요. ‘부담 없이 최선을 다해 막아보자’란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게 하나 있는데 제가 펀칭을 했거든요. 그게 좀 어렵게 날아온 볼이었어요. 그걸 좀 멋있게 쳐냈다면 조금 더 큰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경기가 제게도 참 특별해요. 우리집 장식장에 당시 끼었던 장갑이 있습니다. 종혁이가 경기 끝나고 제게 줬거든요. 장갑을 자주 보다 보니까 더 잊기 어려운 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산에서 뛰었던 2013년이었을 거예요. 포항 스틸러스 원정이었는데요. 포항 원정 결과로 파이널 A, B가 나뉘는 상황이었죠. 제가 전반전에 득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2-1 승리에 이바지했어요. 지금은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로 계신 (박)용호 형이 극적인 결승골을 넣으면서 파이널 A로 향했던 경기였습니다. 모든 선수와 얼싸안고 소리 지르면서 눈물까지 흘렸던 경기였어요.
Q. 프로에서 400경기 이상 뛰면서 수많은 지도자를 거쳤습니다. 가장 감사한 분을 꼽자면 어떤 지도자가 떠오릅니까.
한 분을 꼽기가 어려운 듯해요. 그래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이영민 감독님이 아닐까 싶어요. 부천에 왔을 때부터 제게 굳건한 신뢰를 보내주십니다. 선수 생활 말년에 제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주시죠. 이영민 감독님을 만나서 제가 K리그 400경기 출전이란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어요.
부산에서 함께했던 안익수 감독님 생각도 많이 납니다. 안익수 감독님 밑에서 크게 성장했거든요. 감독께서 기회를 주신 덕분에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감독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프로에선 어떻게 생활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배웠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어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어려울 때는 많았죠. 열심히 하는 데 성과가 나지 않을 때 특히 그랬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포기하기보단 훈련량을 늘리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눈에 띄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죠.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훈련을 더 했어요. 몸이 힘든 날엔 가볍게 러닝을 뛰거나 공을 가지고 놀면서 다음 일정을 준비했죠. 개인적으론 언덕을 좋아해요. 가파른 언덕을 힘들게 뛰고 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언덕을 꾸준히 뛰면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기도 하고요. 몸이 좋아지면 자신감도 붙습니다. 저는 힘든 시기를 ‘훈련량을 늘려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Q. 지금도 축구가 재밌습니까.
아주 재밌어요. 축구 없인 못 살 것 같아요(웃음). 누구든지 세월을 거스를 순 없잖아요. 종종 은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커지죠. 저는 지금도 운동장에서 뛸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를 뛰고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 더 행복한 것 같아요. 몸이 힘들지 않은 날엔 덜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아내에게도 몸이 힘든 날엔 ‘나는 참 행복하다’는 얘길 해요. 축구를 지금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Q. 한 분야에서 14년 이상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많은 청년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K리그에서 400경기 이상 뛴 몇 안 되는 선수잖아요.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실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데요(웃음). 제가 그럴만한 선수인가 싶긴 한데... 질문을 주셨으니까 제 생각을 얘기해 볼게요. 저는 운전할 때마다 속으로 ‘나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란 얘길 반복해요. 저는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명성이 대단하거나 큰돈을 벌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만큼 사랑하는 축구와 평생을 함께하고 있어요. 축구가 옆에 있어 저와 가족 모두 행복합니다.
청년들이나 직장인의 삶을 제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자기 꿈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매 순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꾸준히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머릿속을 비우고 더 땀 흘려요. 그러다 보면 꼭 좋은 기회가 오더라고요.
팀에 꼭 필요했던 선수. 이전엔 ‘부산 원클럽맨’이란 수식어를 꼭 달고 싶었어요. 지금도 부산하면 한지호를 떠올려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죠. 저는 박지성 선배를 가장 존경해요. 박지성 선배는 현역 시절 어떤 팀에서나 없어선 안 될 존재였잖아요. 지금도 종종 박지성 선배 영상을 찾아봅니다.
박지성 선배는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면서 팀에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는 선수였습니다. 저도 그런 선수로 기억될 수 있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Q. K리그 400경기 출전이란 대기록을 달성한 한지호의 꿈은 무엇입니까.
제게 기회를 주신 이영민 감독님과 부천에서 꼭 K리그1으로 향하고 싶습니다. 승격에 대한 간절함이 정말 커요. 승격이 얼마나 기쁜지 잘 알고 있고요. 지금은 승격이란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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