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10만원으로 통일한다는 비혼친구... 너무 서운해요" [혼자인家]
식장에 키오스크까지 등장...축하 의미 퇴색
지나치게 비싼 값 매기는 웨딩업계도 문제
서양은 선물하는 '레지스트리 문화' 일반적
[파이낸셜뉴스] 또, 청첩장을 받았다. 몇 번째인지도 모른다. 친구, 친척, 직장 동료까지, 몇 달에 한 번씩 청첩장이 날아온다. 문구는 정중하다.
“저희 두 사람의 소중한 만남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소중하고 힘찬 내디딤이 될 수 있도록 귀한 발걸음 하시어 축복해 주시면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솔.직.히 축하보단 축의금 걱정부터 앞선다. 얼마짜리 관계인지 늘 고민이다. 사회적 관계를 가늠해줄 액수. (물가를 반영해) 친하면 20만원, 안 친한데 자주 보면 10만원, 안 친한데 잘 안 보면 5만원을 낸다.
최근 1인 가구와 비혼주의자가 늘어남에 따라 ‘축의금’ 관련 논쟁도 뜨겁다. 고물가에 결혼식장 식대까지 오르면서 예비부부와 하객 모두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 이에 누리꾼들 사이에선 “이해된다”, “서운할 것 같다”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여성 A씨는 오는 12월 3년 동안 교제한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식장 예약은 물론 스튜디오 촬영까지 주요한 일정을 모두 마친 이들 부부는 친한 지인들과 식사자리를 마련하며 청첩장을 나눠주고 있다. 문제는 최근 A씨의 오랜 절친 B씨와 ‘청첩장 모임’을 가지면서 일어났다.
“나 축의금 10만원으로 통일해서 내는 거 알지?”
오래 전부터 비혼을 선언해 온 B씨가 지인들 결혼식에 10만원으로 축의금을 통일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절친 사이에도 적용될 줄 꿈에도 몰랐다는 게 A씨 반응이다.
그는 “본인이 결혼 생각 없어서 다른 지인들 결혼식에 10만원 하는 건 알겠는데 절친하다고 믿어왔던 우리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니 기분이 묘하다”라고 하소연했다.
불만은 비혼자들도 많다. 5만원이든, 10만원이든 결과적으로 돌려받지 못할 돈이기 때문이다. “10년간 열심히 냈는데 나는 결혼 못 하면 기부천사 꼴이네”라는 푸념도 들린다.
급기야 혼자 웨딩드레스, 턱시도를 입고 비혼식을 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또 비혼을 선언한 친구가 결혼한 친구들에게 여행비용을 보태달라고 했다는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지난 4월 신한은행이 발간한 ‘2024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인의 결혼식에 가지 않는다면 축의금으로 5만원을 낸다는 사람이 전체의 52.8%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만원을 낸다고 답한 사람이 36.7%, 20만원이 3.3% 순이었다.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는 경우는 10만원을 낸다는 의견이 67.4%로 가장 많았다. 이어 5만원이 16.9%, 20만원이 8.6%, 15만원이 1.5% 순이었다.
봉투만 보내는 경우 평균 축의금은 8만원이었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에는 11만원이었다. 결혼식 장소가 호텔이라면 평균 축의금은 12만원으로 올랐다.
호텔 결혼식에서는 축의금으로 10만원을 낸다는 응답이 57.2%로 가장 많았고, 20만원을 낸다고 응답한 비중도 15.6%에 달했다. 반면 5만원을 낸다는 응답은 10.8%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축의금을 편리하게 받기 위해 키오스크까지 등장해 눈길을 모았다. 신랑, 신부를 선택한 뒤 축의금을 넣으면 식권이나 주차권이 발급된다. 하객별 축의 금액과 총금액에 대한 데이터도 엑셀로 제공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축하의 의미를 그저 돈으로, 기계적으로 상대한다는 부분에서 부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축의금 문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됐다는 것. 결혼이라는 게 하객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자리인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에게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비싼 값을 매기는 웨딩업계가 문제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웨딩업계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직후부터 식대나 웨딩홀 대여 등의 가격을 일제히 인상했다.
식장마다 요일별, 비성수기 ·성수기 등에 따라서 가격도 천차만별인 데다 대략적인 표준 가격을 알 수 없는 깜깜이 풍토도 문제라는 의견이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유사하게 결혼식에 금전적 선물을 주는 전통이 있다. 중국에서는 홍바오(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주고, 일본에서는 ‘고슈기’라는 봉투에 돈을 넣어 신랑 신부에게 전달한다. 특히 일본은 하객 수가 평균 65명 정도로 비교적 적지만, 축의금 액수는 상당히 높다. 주로 새 지폐로 3만 엔(약 30만원)을 주며, 이 중 1만 엔은 축하의 의미로, 나머지 2만 엔은 음식값과 선물비에 대응하는 금액이다.
반면 서양인들에게 축의금은 낯설다. 작은 결혼식이 일반적인 영미권에서는 신랑·신부에게 선물을 줄 뿐, 돈을 건네지 않는다. 부부가 원하는 물품을 미리 목록으로 등록해 두면 하객들이 그 물품을 사주는 ‘레지스트리’ 문화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이면 허례허식을 걷어내고, 진정으로 축하 받는 결혼식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결혼식 #비혼 #청첩장 #축의금 #레지스트리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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