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남성 독자들이여, 근대적 문학관을 극복하라

한겨레 2024. 10.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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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나의 첫 소감은 이를 두고 각계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란 의문이었다.

그러나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은 물론 우리 사회를 한 번 들었다 놓을 만큼의 변화,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세계문학의 변방에서 일어난 일종의 '반역'에 대한 세계적 공인이자 인정이란 점에서 그 상징적 결과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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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은 한국문학의 거울인가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관계맺음에 대한 새로운 고찰
최원식 , 류중하 , 오민석 , 임홍배 , 김응교 , 곽형덕 , 권성우 , 이병훈 , 우석균 지음 l 섬앤섬(2018)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나의 첫 소감은 이를 두고 각계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란 의문이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간극은 너무 먼 것이었다. 서구를 원본 삼아 진행되었던 근대에 뒤져 식민지를 경험하고, 그나마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이 분단으로 토막 난 상황에서 한국어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자리하게 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졸업과제로 그간 배운 한국문학 작품 중 앞으로 100년 뒤에도 사람들이 찾아 읽게 될 작품은 무엇이며 그 이유를 비평하라는 것이 있었다. 한글의 본격적 사용이라는 근대문학의 출발은 1919년 3·1만세운동을 통한 민족의식의 각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처럼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문학이 아시아권 여성 중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터져 나올 갖가지 반응은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이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좋은 탐구 대상이다. 대중은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번역이 아닌 원서로 읽는다는 쾌감 덕분인지 인터넷 서점 접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은 노벨 문학상 발표를 전후해 주류 언론이 주목해왔던 한국의 남성 시인과 작가가 아니라 뜻밖에도 자신들이 발견하고 옹호해온 작가가 수상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이었다. 그간 읽어왔던 한강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앞다퉈 공유하며 노벨상 수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에 비해 수많은 남성 지식인과 독자들이 한강의 작품을 미처 읽지 못했거나 읽었어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일종의 커밍아웃이 있었다. 보수 매체의 한 언론인은 미처 읽지는 못했지만(아마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축하한다며, 번역가의 노고를 새삼 강조하기도 했다. 굳이 고백하자면, 미처 근대적 문학관을 극복하지 못한 나 역시 작품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하더라도 작품이 나의 취향에 모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은 물론 우리 사회를 한 번 들었다 놓을 만큼의 변화,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세계문학의 변방에서 일어난 일종의 ‘반역’에 대한 세계적 공인이자 인정이란 점에서 그 상징적 결과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4·3과 5·18,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한국의 주류(보수) 진영에서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다뤘다는 것이다. 다음은 관이 주도한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아닌 민간에서, 그것도 해외에서 먼저 자발적으로 발견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가장 많이 이야기된 것 중 하나가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세계문학은 한국문학의 거울인가’는 한국작가회의에서 2017년에 주최한 제3회 ‘세계문학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아홉 개의 강좌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불과 7년 전의 일이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금 한국문학의 세계문학으로서의 가능성과 현실을 읽는 것이 다소 낡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문학의 시대가 목전에 와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던 괴테의 말을 염두에 두고, 우리 문학이 어떤 노력의 결과로 현재에 이른 것인지 생각하며 읽어볼 만하다. 그날은 이미 우리 앞에 와버렸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남았을 뿐이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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