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을 ‘팔레스타인 전쟁반대’ 시위자들이 탔다면 말이지 [책&생각]

한겨레 2024. 10. 18.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친애하는 동료가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추천했다.

배리 로페즈는 잔혹 행위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고 강물의 반짝임에, 파도의 반짝임에, 나무에, 늑대에, 바다코끼리에, 어린아이의 안녕에, 우정에, 사랑에, 우리가 빛이라고 부를 모든 것에 인간다움을 집어넣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l 북하우스(2024)

친애하는 동료가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추천했다. 무려! 배리 로페즈!의 책이다. 나는 그의 책 ‘북극을 꿈꾸다’를 읽었고 그가 얼마나 빛을 잘 보는지 잘 알고 있다. “태양은 늘 하늘 어디선가 빛난다”라는 평범한 문장도 그가 쓰는 맥락 안에서는 신비롭다. 그는 각 생명체가 그 생명체로 살기 위해 무엇이 핵심적인지 잘 알고 있어서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더 많은 존중과 사랑이 흘러넘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동료는 경고했다. 책의 첫 장은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배리는 일곱 살 때 엄마의 지인인 유명한 의사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일은 4년간 계속되었다. ‘하늘 한 조각’이라는 글은 배리 로페즈가 그 아동 성도착자의 방에서 강간을 당한 뒤 침대에서 몸을 조심조심 움직여 블라인드 끝단 밑으로 보이는 하늘 한 조각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붙인 제목이다. 마치 마음대로 짓밟힌 뒤 “침대에 던져진 헝겊 인형” 같은 아이의 눈에 “하늘 위로 구름, 새, 별들이 지나갔다.” 그 시절 그에게 자부심이 있다면 자신이 더러운 짓을 당하면 네 살이었던 동생은 지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있었을까? 있었다. 일곱 살 생일 선물로 받은 여덟 마리 비둘기들. 생명으로 약동하는 것 같은 비둘기들. 그는 자전거로 새들을 뒤따라갔다. 그럴 때면 어린 마음과 새가 함께 세상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일부러 날기를 포기하고 곤두박질치던 비둘기들, 그러나 지면까지 불과 몇 센티미터를 남겨두고 그 하강에서 벗어나 다시 날개에 힘을 주고 너른 하늘로 솟구치던 나의 비둘기들.” “아침이면 우리 지붕마루에 나란히 앉아 공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던 새들을 보며 나는 이해했다. 이들은 빛이 있어 행복하구나.” “나에게는 무한히 용서하고 무한히 위로하는 빛이라는 중심축이 있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과 벽돌집의 옅은 벽면과 출렁이는 수면까지, 주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적시는 빛이 내 존재를 지탱했다. 그 빛, 그리고 나를 하늘로 나 자신의 바깥으로 끄집어내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던 새들이 내 삶에 희망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배리는 빛과 자연의 생명력에 어린아이가 걸 수 있는 최대치의 믿음을 걸었고 생명의 기운을 한번 발견하면 그 감각은 아무리 겁에 질린 사람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훗날 배리는 집요한 여행자가 되었고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십니까?’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랑 때문에 배리는 괴로워했다. ‘팔레스타인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맞아 죽어가고 캘리포니아 포도밭에는 화마가 덮치고, 개발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숲을 쓰러뜨리고, 학자금 대출의 폭리에 젊은이들 등골이 휘어지고…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가능할까?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지구라는 대상을 향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포함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어색해하지 않고,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배리 로페즈는 잔혹 행위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고 강물의 반짝임에, 파도의 반짝임에, 나무에, 늑대에, 바다코끼리에, 어린아이의 안녕에, 우정에, 사랑에, 우리가 빛이라고 부를 모든 것에 인간다움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가가 되었다. 책 제목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가 그의 인생 이야기 자체다. 지난주에 친구들과 만약 노벨평화상을 ‘팔레스타인 전쟁 반대’ 시위자들이 탔다면 어땠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