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서민 위한 ‘디딤돌 대출’마저 축소… 실수요자 혼란
정부가 대표적인 서민 대출 상품인 ‘디딤돌 대출’ 금리를 지난 8월 0.2~0.4%포인트 인상하더니 2개월 만에 기습적으로 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내 집 마련을 계획하던 신혼부부 등이 잔금 마련에 큰 혼란을 겪게 됐다. 특히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수개월 내 입주를 앞둔 입주 예정자들은 디딤돌 대출 이용이 아예 불가능해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금융 당국의 가계 대출 관리 강화 기조에도 디딤돌 대출에 대해선 “대상을 축소하지 않겠다”고 꾸준히 밝혀 왔다. 이에 서민 실수요자 사이에서 “정부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서민을 고금리 대출로 몰아” 반발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 오는 21일부터 디딤돌 대출 취급을 일부 제한한다. 2014년 처음 출시된 디딤돌 대출은 연소득 6000만원 이하(신혼 85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들이 5억원(신혼 6억원) 이하의 주택을 살 때 최대 2억5000만원(신혼 4억원)을 저금리(연 2.65~3.95%)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올해 초 출시된 신생아특례대출 역시 디딤돌 대출에 속한다.
그간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디딤돌 대출은 담보인정비율(LTV)을 80%까지 인정했지만, 앞으로는 일반 대출자와 마찬가지로 70%로 줄인다. 또 기존에는 주택금융공사 보증에 가입하면 소액 임차인을 위한 최우선변제금(서울 5500만원)도 포함해 대출해줬지만, 앞으로는 대출금에서 이를 제외한다. 아직 등기가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후취 담보대출’은 아예 중단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일반 매매계약을 하는 수요자는 대출 한도가 수천만원 줄어들게 되고, 청약 당첨으로 신축 아파트 입주를 준비하던 사람도 디딤돌 대출로 잔금을 치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디딤돌 대출 대응을 위한 온라인 채팅방에는 하루 만에 1400여 명이 모여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제도가 바뀌는 21일이 되기 전 대출을 접수시키기 위해 은행 지점을 돌아다닌다는 사람도 많았다. 다음 달 경기도 용인의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인 A씨는 “2022년 초 청약에 당첨되고서 디딤돌 대출만 믿고 입주를 기다렸는데, 입주 한 달을 앞두고 대출이 막힐 줄은 몰랐다”며 “정부가 서민들을 고금리 대출로 밀어내고 있다”고 했다. 최근 대구에서 4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계약한 신혼부부도 “원래 3억6000만원 대출이 가능하다고 보고 계약했는데, 바뀐 정책에 따르면 2억8700만원이 한도”라며 “7300만원이면 부부 연봉을 합친 수준인데, 이 돈을 갑자기 어디서 구하느냐”고 했다.
◇”수요자가 정책 변화 예측 가능해야”
국토부가 갑자기 디딤돌 대출을 조이고 나선 배경엔 최근 전체 가계대출 증가 폭은 줄었지만, 정책대출 증가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5조2000억원 증가, 8월 증가 폭(9조70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러나 국토부의 디딤돌·버팀목 대출은 8월 전월 대비 3조9000억원 늘더니 9월에도 3조8000억원 증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협의 끝에 소득 기준이나 주택 가액 등 대출 대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택도시기금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예외적으로 허용하던 부분을 손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디딤돌 대출 출시 때부터 줄곧 미등기 신축 아파트에 대출을 해줬고, 최우선 변제금 액수까지 대출 한도에 포함한 것도 9년째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던 정부가 ‘기습 작전’처럼 제도를 바꾼 것에 대한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정책 대출 목표액 55조원 가운데 이미 40조원 이상이 집행돼 더 많은 수요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가계 부채 총량을 줄여야 한다는 원칙은 이해하지만,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로 활용되는 정책 대출은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며 “신혼부부나 저소득 가구는 사소한 정책 변화에도 큰 충격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유예기간이라도 뒀어야 한다”고 했다.
☞디딤돌 대출
주택도시기금에서 무주택 서민을 상대로 주택 구입 자금을 낮은 금리에 빌려주는 상품.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5억원 이하의 집을 살 때 최대 2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신혼부부 대출 한도는 최대 4억원이다. 현재 금리는 연 2.65~3.95%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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