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회한[이준식의 한시 한 수]〈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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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바람 불고 비까지 몰아쳐, 발이며 휘장까지 쏴 하는 가을 소리.
시인은 그곳을 향한 길이 평탄하였기에 '딴 길은 아예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탄식한다.
비바람 속 가을밤을 지새우며 '덧없는 인생'에 심란해한다.
시인의 비극이 문학의 광휘로 남는다는 아이러니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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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바람 불고 비까지 몰아쳐, 발이며 휘장까지 쏴 하는 가을 소리.
촛불 가물대고 물시계도 그칠 즈음, 뒤척뒤척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 보고, 일어났다 앉았다 평온치 않은 마음.
세상사 유수처럼 제멋대로 흘렀으니, 돌아보면 한바탕 꿈인양 덧없는 인생.
취향(醉鄕)으로 가는 길이 평탄해 자주 가느라, 딴 길은 아예 갈 엄두도 못 냈지.
(昨夜風兼雨, 簾幃颯颯秋聲. 燭殘漏斷頻欹枕, 起坐不能平.
世事漫隨流水, 算來一夢浮生. 醉鄉路穩宜頻到, 此外不堪行.)
―‘오야제(烏夜啼)’ 이욱(李煜·937∼978)
취향, 삶의 지향을 망각한 채 주색에 탐닉한 미망(迷妄)의 세계. 시인은 그곳을 향한 길이 평탄하였기에 ‘딴 길은 아예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탄식한다. 비바람 속 가을밤을 지새우며 ‘덧없는 인생’에 심란해한다. 놀랍게도 이 노래의 주인공은 일국의 제왕에서 망국의 신하로 전락한 혼군(昏君). 그 탄식과 회한마저 군주라기엔 너무나 연약하고 무기력하다. 한데 문학사는 이 혼군을 ‘천고사제(千古詞帝)’, 역사에 길이 남을 사(詞)의 제왕이라 치켜세운다. 망국의 한이 서린 애상미(哀傷美)와 굴곡진 삶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이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고 인정한 때문이리라. 시인의 비극이 문학의 광휘로 남는다는 아이러니를 실감한다.
시인은 당과 송 사이 반세기 남짓 존속했던 오대(五代) 시기 남당(南唐)의 황제. 마지막 임금이라 후주(後主)라는 칭호가 따라붙어 통칭 이후주라 불린다. ‘오야제’는 곡명,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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