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내 모든 것들의 탄소발자국

기자 2024. 10. 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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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를 한 장 덜 쓰거나 텀블러를 사용한다고 환경적인 효과가 있을까. 기후가 이상한데 뭐라도 해야지, 시도한 순간 주변의 회의주의자들이 이렇게 묻는다. 비슷하게 “재사용한다고 쓰는 물이랑 세제 따지면 그게 오히려 환경에 더 나쁘대”라는 실용주의 버전이 있다.

몸무게를 빼려면 현재 내 몸무게는 물론 섭취 음식이나 운동별 열량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는 힘이 세다. 1㎏ 차이가 엄연히 다르다. 고로 몸무게 다이어트에 체중계가 필요하듯 탄소 다이어트엔 저울이 필요하다. 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비닐봉지 무게도 잴 수 있는 미세 저울을 하나 마련했다.

플라스틱 칫솔은 썩지 않아도 대나무 칫솔은 자연적으로 분해된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아니라 나무로 물건을 만들어도 탄소는 새어 나온다. 캔 음료냐 유리병 음료냐, 브리타 정수기냐 페트병 생수냐, 실리콘 도마냐 플라스틱 도마냐 그것이 문제로다. 무엇이 좀 더 친환경적인가,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생산, 소비, 폐기 전 단계별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면 된다.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1. 탄소발자국이 궁금한 물건을 선정한다. 2. 물건의 소재별 무게를 측정한다. 3. 소재별 무게와 폐기 방법에 따라 탄소배출계수를 곱하면 탄소발자국이 계산된다. 가령 세제 용기는 폴리프로필렌 뚜껑과 폴리에틸렌 본체와 라벨 등으로 구분된다. 만약 세제를 리필하려고 용기를 세척한다면 사용한 수돗물 무게를 재고, 용기 재활용을 한다면 소재별 재활용률을 포함해 계산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가벼운 대나무 칫솔처럼 원재료가 적게 투입된 물건은 플라스틱 칫솔보다 탄소발자국이 4배나 적다. 그러나 비닐봉지보다 무거운 에코백이나 페트병보다 무거운 유리병의 경우 일회용품의 탄소발자국이 적다. 예컨대 브리타 정수기를 한 번 사용하고 버린다면 페트병 생수가 더 친환경적이다. 스테인리스 텀블러처럼 무거운 물건은 일회용 컵보다 14배나 탄소 배출량이 많다.

그러나 이 말인즉슨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단 14번만 써도 일회용 컵보다 환경적으로 좋다는 뜻이다. 브리타 정수기나 텀블러를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탄소발자국을 조사한 생리대, 텀블러, 세제 통 등 웬만한 제품은 한 달만 꾸준히 사용해도 일회용품보다 환경 영향이 훨씬 적었다. 6개월, 1년으로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격차는 훨씬 커진다. 일회용품 만드는 데도 에너지와 자원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회용 세제 통이나 면 생리대를 세척하는 데 물을 쓴다지만, 새 물건인 일회용품을 생산할 때 이보다 더 많은 물을 쓴다.

에어컨과 자동차 등 사용 시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품목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건은 제조 단계에서 사용과 폐기 단계보다 훨씬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쓴다. 새 물건의 생산을 줄이고 계속 재사용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가장 좋다. 너 혼자 실천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하는 질문에 탄소발자국은 숫자로 응답한다. 소용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행동도 1개월 이상 꾸준히 하면 환경에 이롭다. 번뇌하지 말고 계산하면 답이 나온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서 11월에 다 쓴 화장품 용기의 무게를 재고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모임을 연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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