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자 배제’ 논리는 현재진행형[책과 삶]

허진무 기자 2024. 10. 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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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우생학
김재형·민병웅·박지영·소현숙·이영아·최은경·현재환·황지성 지음
돌베개 | 32O쪽 | 1만9000원

우생학(優生學)은 유전법칙을 응용해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의 사촌인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우생학을 처음 주장했다. 나치 독일에선 게르만족의 우월함과 다른 민족의 열등함을 강조하며 유대인, 장애인, 성소수자 학살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운영했다. 한국은 우생학과는 거리가 먼 국가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여덟 학자가 지은 <우리 안의 우생학>은 한국 사회도 ‘우생사회’라고 주장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역사를 짚어가며 국가, 민족, 과학의 이름으로 사회에 뿌리내린 우생학의 사고, 제도, 기술을 찾는다. 적격자를 보존하고 부적격자를 배제해 공동체의 발전을 이룩하려는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제국은 우생학적 차별로 조선을 통치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들도 ‘우생운동’을 벌였다. 민족의 세계적 경쟁 시대에서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우생학을 받아들였다. 조선의 페미니스트들도 여성을 봉건질서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생학을 지지했다. 소수의 건강하고 총명한 자녀만 낳으면 출산과 양육의 부담이 줄어 자기계발과 사회진출에 힘쓸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의 유전학자들과 의학자들은 ‘민족우생’의 가치를 설파했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 8개 시설의 지적장애인들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사례가 밝혀졌다.

한센병은 감염병이지 유전병이 아닌데도 전국의 한센인들은 강제적인 불임수술(단종)을 당했다. 유전자 산전진단 기술의 경우 목적이었던 성 감별이 금지당하자 기형아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확대됐다.

저자들은 머리말에서 “우생학을 그저 나쁜 것으로 묘사하며 ‘악마화’하는 것은 우생학이 실제로 차별을 양산하는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생학의 비윤리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우생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려 한다”고 밝혔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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