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우연이 낳은 아름다운 슬픔[책과 삶]
바우키스의 말
배수아·문지혁·박지영·예소연·이서수·전춘화 지음
은행나무 | 292쪽 | 1만7000원
그리스 신화에는 ‘바우키스’의 일화가 나온다. 평범한 농부로 변장한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하룻밤 잠잘 곳을 찾지만 모두 거절당한다. 작고 허름한 오두막에 사는 노부부 바우키스와 필레몬만이 이들을 성의껏 대접한다. 자신을 환대하지 않은 마을에 벌로 홍수를 내린 제우스는 노부부에게 산 위로 올라가라고 말한다.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각각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배수아의 단편 ‘바우키스의 말’은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변형한 작품이다. 바우키스와 남편 필레몬은 소설 속 ‘나’와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 비유된다. “우연히 들려온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연과 우연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작품 후반부 ‘음악가’의 등장은 전개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신비롭고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독자를 아름답고 슬픈 순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가 특유의 비서사적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인 <바우키스의 말>은 수상작 배수아의 작품과 함께 5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김유정문학상은 소설가 김유정을 기려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 중 뛰어난 작품을 선별한다. 이들 작품에선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면과 문학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바우키스의 말’과 함께 실린 수상 후보작 5편도 눈길을 끈다. 현대 한국 사회와 그 안을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진중하고 세밀하게 재현하는 작품들이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 전춘화의 ‘여기는 서울’, 박지영의 ‘장례 세일’이다.
오늘날 혁명의 의미를 되짚거나(‘그 개와 혁명’) 중국 교포 청년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해부하는(‘여기는 서울’) 등 각 작가의 개성이 녹아 있다. 늦가을 밤 곶감처럼 하나씩 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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