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소화덮개’ 잘못 쓰면 되레 위험
지자체 공공기관 구매 급증
올 10월까지 10억원 들여
터널·주차장 등 배치 늘어
덮는 과정서 열·연기 노출
비숙련자들 질식 우려 커
소방청 ‘소방관만 사용’ 명시
전기차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질식소화덮개 구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질식소화덮개는 불이 난 차량을 덮어 화재 확산을 막는 소방장비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보호장비를 갖춘 숙련된 인력이 아니면 진화를 시도하다 더 위험해질 수 있는 만큼 비전문가의 사용을 권장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17일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를 보면 공공기관의 질식소화덮개 구매 액수는 올해 10월 현재 9억7909만원으로 전년(4억8133만원)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2022년은 1억4780만원, 2021년은 2736만원이었다. 2022년까지는 지역 소방본부만 구매했는데 2023년부터 지방자치단체 도로사업소, 공공기관 등도 구비하기 시작했다.
질식소화덮개는 습식방연마스크, 열기보호구, 보관함과 한 세트를 이루며 세트당 가격은 300만~400만원 수준이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터널 내 전기차 화재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500m 이상 터널에 이 장비를 배치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남산1·2·3호 터널 양방향 입구 쪽에 하나씩 비치했고, 지난달 상도·금화·북악터널에 설치했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 5월 관내 주차장 20곳에 놓아뒀다.
설치 장소는 터널·주차장 등에서 공동주택 단지로 확대되고 있다. 부산도시공사는 임대아파트 19개 단지에 19세트를, 충남 당진시는 공동주택 41개 단지에 84세트를 설치할 예정이다.
당진시 관계자는 “초동조치로 전기차에 덮으면 열 폭주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주택 중 지하주차장에 충전시설이 있는 곳에 설비할 계획”이라면서 “인천 아파트 전기차 화재로 시 차원의 지원대책이 없냐는 문의가 많아 예비비를 투입해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숙련된 소방 인력이 아닌 민간인이 이 장비를 쓰기엔 위험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덮개를 덮는 과정에서 열과 유해 연기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열 폭주는 몇초 만에 급격히 진행될 수 있어 제대로 된 보호장구가 없다면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소방당국은 민간 사용을 권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도 터널에 비치한 질식소화덮개는 훈련된 소방관만 사용하도록 매뉴얼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질식소화덮개는 소방관이 사용하는 전문 소방장비”라며 “열 폭주 및 급격한 연소 확대, 인체에 해로운 연기 등으로 민간이 쓰기에는 위험성이 따른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기관은 소방기관과 달리 개인보호장비와 전문 진압장비 등이 없기 때문에 사용을 권장할 수 없다”고 했다. 소방청은 내년까지 전국 1133곳 119안전센터에 질식소화덮개를 모두 배치할 계획이다.
전기차 화재 대응 전문업체인 해치세이프의 정지연 대표도 “전기차 화재를 보면 무조건 신고하고 빨리 대피해야 한다. 덮개를 덮으려다 연기를 마셔서 질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급박한 순간에 그걸 사용하기 위해 보호장비를 착용하기가 쉽지 않고, 훈련된 인원 최소 2명이 함께 덮어야 하는데 옆이나 앞뒤로 주차된 상황이라면 어렵다”고 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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