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북한 대신 ‘코리아’로만 불릴 날 꿈꾸며 뜁니다”

강성만 기자 2024. 10. 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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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반도기와 함께 세계 곳곳 달리는 캐나다 한인 나양일씨

한반도기를 달고 마라톤을 뛰는 캐나다 교포 나양일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캐나다 동포 나양일(57)씨는 오는 19~20일 서울과 주변 산을 달리는 서울100K 국제 울트라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한다. 나씨 등 200여명의 주자는 19일 새벽 5시 서울시청을 출발해 인왕산과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 등 봉우리 여섯을 오른 뒤 한강과 청계천을 거쳐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모두 107.4㎞ 코스로 나씨의 목표는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그는 대회 뒤 바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 22일 재직 중인 캐나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6년 ‘냉동공조 영업’ 경력으로 캐나다로 기술 이민을 한 그는 2012년 마라톤에 입문해 2017년부터 3년 동안 ‘세계 6대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 2017년 보스턴, 시카고, 뉴욕 대회를 차례로 뛰었고 2018년은 도쿄와 베를린 대회를, 2019년에는 마지막으로 런던 대회를 달렸다.

이민 전부터 등산 마니아였던 그가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 섭렵 뒤 눈길을 돌린 게 바로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이다. 이미 42㎞ 코스인 몽블랑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비롯해 제주에서 열린 ‘트랜스 제주 100㎞ 대회’까지 6개 대회를 완주했다.

2022년 몽블랑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완주한 나양일씨가 한반도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나양일씨 제공
2018년 평양마라톤대회에서 완주를 앞두고 한반도기를 들고 뛰는 나양일씨. 나양일씨 제공

나씨는 자신이 참가한 3번째 ‘세계 6대 마라톤 대회’인 뉴욕 마라톤부터 파란색 한반도와 독도가 그려진 단일기(한반도기)를 상의에 달고 뛰었다. 트레일 대회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회는 배낭에 단일기를 달고 뛸 작정이다.

그가 준비한 단일기는 6년 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도 펄럭였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그는 2018년 4월 평양 마라톤 대회(제29차 만경대상국제마라손경기대회)에 참가해 골인 직전 김일성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두 손으로 단일기를 펼쳐 보였다. “마라톤 출발 전에 평양 현지 안내원에게 단일기를 달아도 되냐고 물으니 달지 말라더군요. 그래서 단일기를 주머니에 넣고 뛰다, 골인 지점인 경기장에서 단일기를 펼치고 들어왔더니 관중석의 평양 주민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 쳐주고 통일 통일을 외치며 환호했죠. 북에서는 단일기를 통일기라고 하더군요.” 지난 1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나씨의 말이다.

그가 처음 단일기를 단 2017년 11월은 미국과 북한이 강하게 충돌하며 한반도에 전쟁 먹구름이 진하게 드리운 시기였다. “그땐 정말 여기 교민 대부분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뉴욕에 가면서 ‘누군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으며,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더군요.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미국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죠.”

뉴욕 마라톤 당시 연도의 한인들이 외치는 ‘코리아 화이팅’을 들으면서 그는 단일기를 계속 달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교민들이 단일기를 보고 남한이나 대한민국 혹은 북한이라 부르지 않고 코리아라고 불러줬을 때 앞으로 남과 북이 하나의 코리아로 불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다국적 냉동공조회사 마케팅 담당자로 일한 그는 캐나다 이민 뒤에도 같은 계통의 일을 하고 있다. 이민 동기도 여느 이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냉동공조 기계설비를 파는 일을 했어요. 영업 상대는 대개 대형 건물을 짓는 건설사였죠. 당시 영업하느라 일주일 내내 술을 먹어야 했어요. 너무 힘들더군요.” 그는 이민 뒤 취업이 안 되면 일식집을 하려고 일식 조리사 자격증도 땄지만 이민 3개월 만에 바로 취업을 했단다.

19일 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대회 참가

이민 전 산악동호회를 하며 암벽과 빙벽 등반을 즐긴 그는 토론토에서는 마라톤을 택했다. “여기는 주변에 산이 없어요. 등산 하려면 1000㎞ 정도 미국 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한인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했죠.”

그는 대학 시절 총학생회 활동도 한 이른바 386세대이다. “운동에 투신한 정도는 아니지만 학생운동에 관심이 있었고 통일운동에도 열정이 있었어요.”

현재 그의 꿈은 거리를 줄여서라도 계속 단일기를 달고 뛰는 것이다. 단일기를 달고 북한 땅에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게 버킷리스트 1호이다. “내년에는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을 등반하고 남미의 파타고니아 트레일도 도전하려고 해요.”

그는 올해로 19년 차 이민자이다. 남북 분단은 이민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분단이 피부로 확 와 닿는 일은 사실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이 염려되죠. 이는 교민들의 공통된 생각일 겁니다. 토론토에는 북에서 넘어온 분들도 많아요. 그들이 살아온 체제에 대한 시각차 때문에 일부 교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어요. 진보적인 한인 교회를 다니던 탈북민 몇 분이 그런 문제 때문에 결국 나오지 않더군요. 같은 민족 내에서도 갈등이 있는 거죠. 그럴 때 분단의 현실을 느낍니다. 중국이나 인도계는 새 이민자가 오면 안내나 조언을 매우 잘해줍니다. 서로 도우며 살아도 힘든 게 이민 생활인데 많지도 않은 한인이 서로 나뉘어 피하려고 하니 안타깝죠.”

지금 한반도 상황은 그가 단일기를 처음 단 7년 전 이상으로 어지럽다. 어떤 생각이 들까? “남북 관계가 잠시 좋았다 다시 나빠졌잖아요. 그 원인을 따지자면 우리 쪽에 있지 않나, 생각해요. 미국과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안보 체제를 구축한다느니 또는 윤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니 북한이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왜 남과 북이 3자인 미국을 빼고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독재자인 박정희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라는 말을 입에 올렸는데 현 정부에서는 자주적인 관점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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