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짚 엮어 예술로 … 런던에 펼친 양혜규 '연결의 미학'
형광등·블라인드 대표작 등
1995년 이후 설치작품 총망라
일상 속 사물 틀 깬 실험 눈길
"예술외연 끊임없이 확장할것"
아시아의 정신이 깃든 외계 생명체(?) 둘이 영국 런던에 등장했다. 색색의 인공 짚이 서로 얽히고설켜 거대한 동물의 형상을 이루는 이 작품은 양혜규의 '엮는 중간 유형-이면의 외계 이인조(The Randing Intermediates-Underbelly Alienage Duo)'(2020). 신화나 전설에 나올 법한 기괴한 모습은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외계 동물이다. 필리핀 현지의 장인과 함께 아시아의 전통적인 직조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를 통해 작가는 아시아의 무속 신앙과 전통, 현대를 잇는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가 이번엔 런던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 '윤년(Leap Year)'이 내년 1월 5일까지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열린다. 영국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서베이 전시로, 199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양 작가의 작품 활동 20년을 총망라하는 120여 점의 작품이 5개 전시관을 가득 채운다.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커미션 신작 3점도 최초로 공개된다. 또 일찍이 독일로 이주한 양 작가가 한국에서 처음 열었던 개인전 '사동 30번지'(2006)는 18년 만에 재현돼 다시 관객을 맞는다.
건조대, 행거, 싱크대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정 용품들이 영국 런던 한복판의 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블라인드는 창문이 아닌 천장과 바닥에 있고, 싱크대는 벽면에 그림처럼 걸렸다. 블라인드로 가린 건 햇빛이 아닌 백색 전구의 빛. 뜨개실, 전통 한지 등 한국의 정취가 담긴 물건들도 곳곳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통과 현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친숙한 물건들을 낯설게 병치한 이곳에 서 있자니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전시는 관람 동선을 따라 걷는 동안 관객들이 '광원 조각' '중간 유형' '의상 동차' 등 양 작가의 대표 연작을 다채로운 형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서베이전이지만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는 대신 다양한 층위를 지닌 양혜규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시기나 매체, 주제에 대한 구분 없이 총체적으로 접근해 스토리텔링을 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그 스토리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조각과 대형 설치, 종이 콜라주 작품으로 펼쳐지면서 이민자의 삶과 노동과 산업, 문화적 전환 같은 주제를 아우른다. 일상적인 사물을 새롭게 재해석하며 문화적 순응을 거부해온 양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시 기획을 총괄한 융 마 헤이워드갤러리 수석큐레이터는 "작품이 처음엔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사회적인 것, 정치적인 것, 신화적이고 영적인 것, 상호 연결성과 움직임의 개념을 시각화한 것으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며 "양 작가는 동아시아의 전통과 민속, 모더니즘, 현대 미술사와 자연 등 다양한 역사와 관습을 넘나든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창고 피스'(2004)는 양 작가가 런던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을 당시 작품을 보관할 곳이 없었던 상황을 그대로 작품화한 것이다. 유럽 곳곳에서 열린 전시가 끝난 뒤 돌아온 조각, 설치 작품들을 박스째로 맥주 박스, 플리스틱 간이 의자 등 창고의 다른 물건들과 함께 높이 쌓아 고정시킨 작품이다. 박스 안에 든 작품은 전시 기간 일주일에 하나씩 풀어 전시된다.
융 마는 "작가의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함과 동시에 작가의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개념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양 작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작가들의 창고 문제는 여전하다"고 전했다.
'사동 30번지-런던 버전'(2024)은 양 작가가 2006년 외할머니가 살던 인천 폐허에서 열었던 한국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당시 무대가 됐던 폐허는 이제 인천에도, 런던에도 없지만 종이접기로 만든 물건들과 조명 기구, 케이블, 선풍기, 건조대, 스탠드 등 전시를 구성했던 작품들을 그대로 선보이면서 지나온 흔적과 변화를 조명한다. 융 마는 "'사동 30번지'(2006)는 기존 미술 전시의 틀을 깬 전시였다"고 평가했다.
[런던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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