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 갇힌 사람들 [코즈모폴리턴]

김미나 기자 2024. 10. 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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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사도우미로 취업해 케냐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한 레지나 블레싱 키알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눈 베이루트 폭격 이후 광장을 떠돌며 지낸다.

국제이주정책개발센터(ICMPD)는 지금의 중동, 특히 레바논에서의 분쟁은 올해 유럽 지역의 이주민 이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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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도심의 한 모스크 옆에 집을 잃은 피란민들이 이불을 깔고 누워 있다. 베이루트/로이터 연합뉴스

김미나 | 국제뉴스팀장

지난해 가사도우미로 취업해 케냐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한 레지나 블레싱 키알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눈 베이루트 폭격 이후 광장을 떠돌며 지낸다. 방글라데시 출신 지밀레 베굼은 이주민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보호소를 찾을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시에라리온에서 온 마리아투 톨레이는 사방에서 터지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에도 자신의 안전을 지킬 도리가 없다고 했다. 독일 도이체벨레와 만난 이주민들은 “우리는 갇혔다.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국경지대인 레바논 남부에서 수도 베이루트까지 전선을 확대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지상전이 이어지면서 레바논 주민 120만명 이상이 집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레바논 보건부가 집계했다. 유엔난민기구 등은 인구 700만명 가운데 4분의 1은 피란을 떠났다고 추산했다. 그런데 키알로와 베굼과 톨레이는 피란조차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약 17만명, 서류 없는 이들까지 합하면 약 4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주민들은 옆 대륙 아프리카에서, 멀게는 1만4천여㎞나 떨어진 아시아의 필리핀에서 왔으나 전쟁통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폭격을 피해 도망치기도 어렵다. 고용주의 비자 발급 보증제도(카팔라)가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현대판 노예제’로 불려온 카팔라로는 노동자들이 고용주 동의 없이 직업을 바꿀 수도, 그만둘 수도 없다. 여권을 압수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고, 임금체불과 착취, 인권침해가 일상이었다. 결국 귀국할 수도 없고, 도망칠 곳도 없는 이들은 베이루트 순교자광장에 모인다. 낡은 매트리스를 깔고 노숙 생활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가득 차 있다. ‘레바논 인종차별 반대 단체’ 소속 파라흐 살카는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도 끔찍했다”며 “지금은 ‘중고 세탁기처럼’ 길거리에 버려지고 고용주가 위험을 피해 도망가는 동안 집 안에 방치돼 있다. 언어도 모르는 곳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길가에 나온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또 다른 전쟁터로 밀려나는 이들은 더 있다. 레바논에 머무는 시리아 난민 약 150만명에게 본국행 여정은 더 위험해졌고, 비싸졌다. 알자지라 방송과 만난 무사 바그다디는 시리아 정권을 피해 레바논으로 피란을 간 지 12년 만인 최근 다시 시리아로 돌아갔다. ‘폭격을 또 다른 폭격으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6천달러(약 820만원). 일주일에 걸친 여정이었다.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뒤, 난민 신분으로 레바논에 머물다 시리아로 돌아온 이들은 25만명으로 추산된다. 바그다디의 아내 유니스는 “여기서도 우리는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지만, 제 마을에서 죽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유럽이 최근 들어 국경 빗장을 강하게 거는 이유에도 이런 배경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다. 국제이주정책개발센터(ICMPD)는 지금의 중동, 특히 레바논에서의 분쟁은 올해 유럽 지역의 이주민 이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쟁은 결국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어디로 가든 탈출할 수 없는 이 상황”(알자지라)은 누가 멈출 수 있나.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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