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 고준 “유명해지고 싶어요. 좋은 영향력을 위해”[스경X인터뷰]

배우 고준은 유명해지고 싶다. 솔직함과 무모함을 조금 더해서 말한다면 ‘유명해지기 위해’ 배우가 됐다. 그런 그와의 인터뷰는 무언가 색달랐다. 보통 배우가 감독의 편집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지만, 그는 아쉬운 장면을 콕 집어 말했다.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하 백설공주)에 형사 노상철 역으로 출연한 고준은 맨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고정우 역 변요한의 눈물은 원 샷으로 담겼지만,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고정우와 둘이 안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얼굴이 안 나왔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이 사람 어른이 돼서 떼를 쓰는 것 같다.
“진짜 연인과 만나다 헤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헤어지는 느낌? 떠나보내기 싫은 ㄴ낌? 실연당했을 때와 느낌이 너무 비슷했죠. 함께 했던 팀과 라포(rapport·상호신뢰)가 깊게 형성됐나 봐요. 작품이 끝나면 제작진과 배우들의 단체 메신저 방도 뜸해지는데, 그런 상황이 짠합니다.”

변영주 감독이 연출한 ‘백설공주’는 그럴 법도 했다. 2021년 기획돼 촬영을 시작한 드라마는 2022년 6월까지 9개월여의 촬영기간을 거쳤다. 그래도 편성이 정확히 잡히지 않아 다시 2년 정도를 허송했다. 당연히 3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고, 거기다 방송이 될지 말지를 함께 맘졸이며 기다렸던 동료들이라 그 각별함은 남다를 듯하다.
“사실 시청률에 대한 기대를, 가시적으로는 하지 않았어요. 경쟁작들이 좋았잖아요. 그래도 주변의 말로는 최근 드라마 중 가장 밀도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늘 좋은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덜 부끄러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백설공주’의 노상철을 한 제 모습이 조금은 덜 부끄럽습니다.”
극 중 배경이 되는 무천시의 무천경찰서 강력 2팀장인 노상철은 아내가 희생된 사건으로 지능범죄보다는 혐오범죄에 대한 분노가 심한 인물이다. 갖은 사고를 치며 무천까지 좌천됐다 다시 살인사건에 휘말린 고정우(변요한)를 보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건의 다른 면을 보고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

“전 늘 모든 역할에 고증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롤모델을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해요. 안 귀찮다고 하시면 들러붙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경찰서에 정식 공문 요청을 해서 강력반 형사님들과 함께했어요. 감정이 없는 이분들도 범죄에는 화가 나고, 직업만 경찰이지 여느 조직사회와 비슷한 일상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실제 형사님들이 보시면 가장 공감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진정성 있는 연기에는 첫 드라마 연출작을 맡은 변영주 감독의 독려도 큰 힘이 됐다. 두 사람은 노상철에 대해 공권력의 진정성을 녹이려고 애를 썼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경찰은 부패하거나 정의롭거나 하는 그 이분법적 접근을 벗어나려 했다. 그는 피의자로 나오는 변요한과는 리얼함을 위해 실제로 극 초반 어색함을 유지했다 천천히 친해지기도 했다.
“젊은 배우들이 많이 활약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변)요한이는 정말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눈으로만 작품을 이끌었고, 하설 역 김보라는 연기 천재인 것 같아요. 조재윤 형과 박미현 선배님, 권해효 선배님과의 연기에서는 밀도를 느꼈습니다.”

그는 실제 젊은 배우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가 유명해지려고 바득바득 노력하는 이유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다. 2020년 KBS2 ‘바람피면 죽는다’ 이후 고준은 운동을 하다 십자인대를 크게 다쳤다. 두 번의 큰 수술 이후 1년을 병상에 누워있는 삶이 계속됐다. 근 손실이 오고 좌절감에 항우울제 처방도 받았다. 더는 연기를 할 수 없어지는지 조급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는데 정신과 치료의 목적으로 미술을 했어요. 어마어마하게 제게 힐링이 됐죠. 단기간 여러 작품이 완성됐는데, 뉴욕에 아시는 분이 작업실에 오셨다가 전시회를 제안하시는 큰일로 이어졌죠. 최근에는 이태원에서도 전시회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정을 위한 일이니까 이 이상의 명성은 원하지 않아요.”
그는 오히려 독립영화나 영상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 독립영화를 찍던 당시 장애인 역할을 위해 실제 장애인을 인터뷰하다 부모님이 우는 모습을 보고 양심에 큰 가책을 받았다. 그래서 빨리 유명해져서 연기나 작품으로 세상을 위로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연기학원 코치를 한 경력으로 무명인 친구들을 돕고, 제작비도 지원한다. 장비도 돈을 버는 족족 샀다.

“제 뜻을 좋게 봐주시는 ‘엑스라지 픽쳐스’라는 회사와 함께하고 있고요. 유튜브 채널도 곧 열 예정입니다. 60여 편을 찍는 일을 돕다 보니 유수의 영화제도 가더라고요. 제 연기로는 제작비를 대기 어렵지만, 그래도 제 이름값으로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제게는 배우예요. 결과적으로 더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배우를 안 할 생각도 있습니다.”
그는 아직은 미천하지만 지금 주류 영화계의 큰 이름이 된 배우 겸 제작자 마동석의 자취를 따르고 싶다. 유명해지는 방법으로 배우를 택했고, 그 유명세로 좋은 영향력을 의도하는 고준의 모습은 다른 배우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순수함이 있다. 그 순수한 고집과 열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내기에, 그가 만든 노상철이 그렇게 작품 이후에도 뇌리에서 잘 잊히지 않는 캐릭터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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