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비난하며 닮아가는 남과 북의 ‘거친 말’ [슬기로운 기자생활]

신형철 기자 2024. 10. 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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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일을 하다 보면 취재원의 글을 오랜 기간에 걸쳐 지켜볼 기회가 생긴다.

이들은 개인적인 자격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기도 하고, 기관을 대표해 기자회견문이나 논평을 내놓기도 한다.

연일 말폭탄을 쏟아내는 북한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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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신형철 | 통일외교팀 기자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취재원의 글을 오랜 기간에 걸쳐 지켜볼 기회가 생긴다. 이들은 개인적인 자격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기도 하고, 기관을 대표해 기자회견문이나 논평을 내놓기도 한다. 기관의 입장을 알리거나 행사를 홍보하는 등 딱딱한 목적으로 올린 글이 대부분이지만, 가만히 그들의 글을 보고 있자면 글을 쓴 당시의 상황이나 필자의 정서·심리 상태, 더 나아가 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글의 품격은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더 뚜렷이 드러난다. 위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슬기로운 언어로 헤쳐나가는 취재원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심리를 정제되지 않은 글로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도 종종 본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은 글은 때때로 그대로 돌아와 자신에게 비수로 박힌다.

글의 품격은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들이 내놓는 글은 그 기관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외교·국방 등 안보 관련 부처에 출입하면 그 나라의 언어를 살펴볼 기회를 얻는다. 나라를 대표해 쓰는 글인 만큼 정제되고, 꼭 필요한 정보와 사실만 담을 때가 많다. 구태여 말을 보태 오해를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교부도 마찬가지고, 군도,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물론 모든 나라가 품격 있는 글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서로를 향해 거친 언어를 쏟아내는 나라들이 종종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미국을 향해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은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레바논을 ‘석기시대’로 돌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연일 말폭탄을 쏟아내는 북한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이 거친 언어를 쏟아내는 것은 나라의 격이나 체면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어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나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교·안보 부처의 언어가 막말로 바뀌어버리면 자연히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실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 안보부처의 언어도 점점 이들을 닮아가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북한당국은 주체도 알 수 없는 ‘무인기 삐라’ 하나 떨어진 것에 놀라 기겁하지 말고 국제적으로 망신스러운 오물쓰레기 풍선부터 중단해야 한다. 만약 북한이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했다. 같은 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무모한 도전 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했는데 남·북 안보당국의 표현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군복 입고 할 얘기 못 하면 더 ××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장관의 말과 달리 안보의 언어는 더욱 정제돼야 한다. 개인의 말실수는 그 피해가 한정적이지만 거친 안보 언어는 나라의 운명을 뒤흔든다. 최근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의 글을 보면 조급함이 느껴진다. 적어도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비난하는 북한의 언어와 우리 정부가 쓰는 언어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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