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직선제 폐해’ 뜯어고칠 때다[시평]

2024. 10. 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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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교육감 직선제 중립성 논란 여전
‘보수·진보’ 표방부터 위법 소지
정치적 편향 교육이 불신 더 키워
미성년자 교육에는 치명적 폐해
정치성향 노출금지 알권리 침해
학부모·시민단체 脫정치가 대안

대한민국의 교육은 해방 이후 오랜 기간 중앙정부에서 관장했다. 과거에는 국정교과서가 주류를 이뤘고, 문교부(교육부의 전신)가 교육행정에 관한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중앙집권적 교육의 변화는 19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교육자치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시작됐다. 시·도별로 교육위원회가 구성되고, 교육감을 선출하면서 지방의 교육자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주민이 교육감을 직선하는 것은 2006년 교육자치법을 개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러한 교육감 직선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다. 선거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데,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할 경우에는 헌법 제31조 제4항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반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대학생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는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정치적 편향성이 나타날 경우 그 폐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는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교육감 선거에 대한 정당의 관여는 교육자치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보듯이 후보자들이 정당 표방을 하는 대신에 보수 또는 진보 후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어 교육감 선거가 정치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지만 묵인되던 것이다.

하지만 진영 갈등이 더욱 심각해진 상황에서 이런 식의 교육감 선거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로 인하여 교육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커지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되새겨 봐야 할 이유가 되고 있다. 이 문제는 과거 교과서에 의한 역사 왜곡 논란과도 유사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이다. 교과서에서 특정 사건, 특정 인물을 미화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그 범위가 한정적이지만, 교육행정 자체가 정치적 편향성을 갖게 되는 경우에 그 파급효과는 훨씬 광범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선거의 정치적 성격이다. 선거는, 그것도 주민 직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하는 가운데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는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유권자들과 정치적 성향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나 후원회 가입 등과 비교할 때, 정당에 가입하는 행위 및 선거에 입후보하여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가 더욱 정치성이 강하다는 점은 널리 인정된다. 교육자치법에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정당의 관여를 금지하고 있으나,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교육행정에 대한 우려와 불신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위원회 등에 의한 간선에 대해서도 비판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주민 직선을 포기할 경우에는 지방교육자치가 크게 후퇴하고, 중앙집권적 교육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면 교육감 선거는 유지하되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의 노출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방안은 어떨까? 아마도 후보자에 의한 공식적인 노출은 억제될 수 있어도 현대 정보사회에서 (더욱이 극심한 진영 갈등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을 확인하려는 것을 막는 것은 ‘알 권리’ 때문에도 매우 곤란할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진영 갈등의 극단화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요원한 일이다. 차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교육과 직접 관련된 교원노조, 학부모 단체 그리고 각종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우선적으로 탈(脫)정치화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다수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보다는 교육감으로서의 능력, 도덕성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가 선거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감 선거를 만들어 가는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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