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노년기 인생 철학

서울문화사 2024. 10. 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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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면 온 힘을 다해 행복하라. 여든아홉의 노학자,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인생의 철학.

답답할 때 수다 떠세요

노화가 서러운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의 적신호다. 잘 보이던 눈이 침침하고, 또렷했던 발음이 어눌해지기 시작한다. 후각도 점점 무뎌진다. 이뿐일까. 걸음걸이와 균형 감각까지, 마치 내 몸이 아닌 것만 같다. 이근후 교수는 저서를 통해 7가지 병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왼쪽 눈이 실명되면서 얻은 중증 시각장애부터 당뇨, 고혈압, 관상동맥협착, 담석, 통풍, 허리 디스크까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질환과 함께하는 삶이다. 악화되는 건강 앞에서 이근후 교수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이 든다는 게 다 그렇지 않냐”는 게 그의 마인드다. 차라리 병을 인정하고 고약한 친구쯤으로 받아들이고 병을 다스릴 방법을 찾는 게 생산적이라고 믿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한다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삶의 언저리에 드리우는 어떤 것쯤으로 죽음을 정의한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운명임을 인정한 뒤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그다.

선생님도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죽음은 한평생 두려운 존재였어요. 학부 시절 시체 해부하는 날에는 맨정신으로 버틸 자신이 없어 술을 마시곤 했어요. 죽음과 가깝게 지내는 의사였는데도 두려움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렇게 살아오다가 지난해 전립선비대증으로 수술을 받았어요.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제 나이가 너무 많았죠. 수술 전날 침상에 누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어요. 만일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잠들듯이 떠나도 그런 대로 행복하겠다는 저만의 결론에 다다르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어요. 이대로 떠나면 내 명(命)은 거기까지고, 살아나면 더 살 수 있으니 기쁜 거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의사로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어요. 떠올려보면 죽은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평온했죠. 그 얼굴들을 생각하며 삶은 고통이고, 죽음은 평화라는 걸 깨달았어요.

올해 여든아홉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모두가 그렇듯 고통이 더 많은 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통에 휩쓸리지 않고, 고통을 재미로 뒤집으면서 살았어요. 젊은 시절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감옥살이를 했어요. 수감 생활이 끝난 뒤엔 취직도 안 되고, 개원도 어렵고,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할 수 없었어요.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어 눈앞이 캄캄했죠. 지나고 보니 그때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지금 제가 있는 곳까지 오지 못했을 거 같아요. 고초를 겪으면서 개원의가 아닌 이화여대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며 정년 퇴임을 할 수 있었어요. 인간사 새옹지마입니다.(웃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개인은 천문학적 확률을 뚫고 태어났어요.
그러니 소소한 일이 있더라도 매달리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노년을 준비하는 중년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살아보니 늙으면 늙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늙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재미가 있으니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을 살게 하는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세상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평생 누군가를 치료하면서 살았어요. 그런 저를 보면서 ‘저 사람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니까 정신 건강은 상당히 좋을 거야’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아요. 고백하자면 저는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된 거예요. 만약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의사를 찾아가 약 처방을 받는 환자가 됐을 겁니다.(웃음) 의사인 저 또한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았던 것처럼 모두가 하나의 정신적 문제는 떠안고 살아요. 중요한 것은 정신이 오염된 상태임을 깨닫고 노력을 통해 정상으로 바꾸는 힘을 발휘하는 자세입니다.

인생이란 뭘까요?

90년을 살아봐도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웃음) 죽는 날까지 모르고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개인은 천문학적 확률을 뚫고 태어났어요.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인 셈이죠. 그러니 소소한 일이 있더라도 매달리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노년을 준비하는 중년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살아보니 늙으면 늙는 대로 재미있습니다.(웃음) 늙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재미가 있으니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끝으로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기왕 살게 된 인생, 찡그리지 말고 소꿉장난하듯이 재미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을 돌보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절한 쓰임을 받으면서 사십시오. 여러분보다 더 많이 산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젊은 날보다 지금이 훨씬 재미있다는 겁니다. 자극에 의한 재미는 잠시뿐이에요. 깊은 만족감과 의미를 동반하는 재미는 삶에서 축적한 것들로 채워집니다. 많은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쌓은 데이터가 충만한 상태에서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값질까요? 인생에서 이룬 성공과 쓰디쓴 실패가 아무것도 아닌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그 자유를 만끽하세요. 아흔을 앞둔 저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분수껏 재미있게 살아봅시다.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50년간 15만 명 이상의 환자를 돌보며 행복한 삶에 대해 연구했다. 국내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었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퇴임 이후에는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청소년, 부모, 가족, 노년 등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을 진행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혜를 전파했다. 지난 40년간 작가로도 활동해온 이근후 교수의 저서로는 <살 만큼 살았다는 보통의 착각> <괜찮아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등이 있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이보미(프리랜서) | 사진 : 이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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