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스레드라는 기묘한 세계

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 2024. 10. 1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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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매일 접속한다. 언제부턴가 노인정입네, 글 반 광고 반입네 비판받는 플랫폼이지만,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해준 고마운 곳인지라 정을 떼기가 어렵다. 그 페이스북에서 언제부터 추천 글에 메타의 새로운 플랫폼인 스레드(Threads)의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시하기엔 너무 자주 보여서 속는 셈 치고 가입했다.

사용 초기엔 장래가 썩 밝아 보이진 않았다. 트위터가 이름을 X로 바꾼 틈에 반짝 탄생했다가 금방 버려지리라 생각했다. 이 판단에 내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사진과 숏폼 영상은 이미 자기네 인스타그램이 꽉 잡고 있으니 텍스트가 주요 콘텐츠일 수밖에 없을 터. 근데 익명으로 글 쓰려면 X가 있고, 실명 밝히고 글 쓰려면 페이스북이 있으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눠 먹을 파이가 없어 속절없이 망하겠거니 생각했건만. 아직까지는 의외로 잘 버티고 있다. 서비스한 지 1년이 지난 올해 7월 현재 이용자가 382만명이란다. 이용자가 827만명인 페이스북이나 714만명인 X의 절반 수준이지만 절대 적지 않은 규모다.

그럼 스레드엔 주로 어떤 글이 올라오는가. 앱을 켜보면 마치 공개 일기장처럼 각자 개인사를 적은 피드가 주르륵 나타난다. X나 페이스북 유저가 온갖 뉴스와 사건 사고에 반응하는 동안 스레드 유저는 줄기차게 각자 할 말만 한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자신의 이상형을 얘기하고,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떠든다.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의 김경수 작가는 스레드를 “인터넷 밈이 돌지 않는 소셜미디어”란 평을 남겼는데, 매우 적확한 평가다. 모두가 개인을 소재로 얘기하니 밈이 생길 수가 없다. 이러한 집단 독백은 플랫폼 색깔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생긴 현상 같다.

스레드는 ‘여성시대’나 ‘FM코리아’처럼 성향이 확실한 플랫폼이 아니다. 사람은 모아놨는데 떠들 주제를 안 정해 놨으니 익숙한 얘기부터 할 수밖에 없다. 처음 만난 이들끼리 할 말 없으면 날씨 얘기부터 떠오르듯, 자기소개 외엔 꺼내 놓을 수 있는 화두가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20년 전 싸이월드 개인 홈페이지와 닮았다. 실제로 이용자 집단 또한 당시 싸이월드처럼 젊다. 연령별 이용자가 10대 이하 22.4%, 20대 39.5%, 30대 22.9%라고 하니, 플랫폼 역사만큼이나 새파란 플랫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스레드는 스마트폰 시대의 싸이월드로 남을까. 모르겠다. 메타는 말 그대로 수다 떨 공간만 열어줬을 뿐, 어떤 곳으로 만들어 갈지는 결국 이용자들 손에 달렸다. 지금에야 파란 탑골이란 자조가 만연하지만, 초창기 페이스북도 대혼돈이었다. 2016년 한 페이스북 인플루언서는 ‘좋아요’ 15만개를 받으면 자동차 바퀴에 자기 다리를 깔아뭉개겠다는 공약을 걸고 실제로 이행했다. 이런 ‘막장 콘텐츠’를 만드는 이가 100만 넘는 팔로어를 보유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이용자는 더 많았지만 과연 더 양질 플랫폼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스레드는 혼란기를 겪고 있을 뿐이라 믿고 싶다. 어느 정도 크기가 크면 플랫폼 나름의 문화와 정체성이 안착하길 바란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성별 불균형 문제다. 스레드의 남성 이용률은 67%, 거의 소개팅 앱 수준의 쏠림을 자랑한다. 이 탓에 ‘남초 소모임’에서 보이는 행태가 재현될까 두렵다. 추종받기 위한 셀카 사진을 올리는 ‘여왕벌’ 유저와, 어떻게든 눈에 띄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시답잖은 자아 도취 글로 도배된 미래를 상상하니 숨 막힌다. 사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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