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 잡고 살지 않아도 돼요, 그저 쉬러 오세요”

김현수 기자 2024. 10. 1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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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민간 주도 ‘고령군 생활인구센터’
지난 8일 경북 고령군 고령대가야시장에 새로 문을 연 고령군 생활인구센터 개소식에서 전홍태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인생 후반 준비하는 수도권 중장년층 체류 공간 등 마련
지역 주민들과 다양한 교류 통해 지방소멸 위기도 극복

“1년 동안 정이 많이 들었어요.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끼리 힘을 모은 거죠.”

지난 8일 경북 고령군 고령대가야시장에서 만난 전홍태씨(62)가 손에 들린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날은 고령대가야시장에 고령 주민과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만든 ‘고령군 생활인구센터’가 문을 연 날이다. 센터 개소식을 기념해 수도권팀과 지방팀 기타 연주 대결에 나선 전씨는 “처음에는 생활인구라는 단어도 처음 들었을 정도로 생소했다”며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한다는 사업이라기에 참여했다가 이제는 수도권 주민들과 둘도 없는 이웃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민간이 주도한 생활인구센터가 고령에서 문을 열었다. 수도권 주민과 지역민이 힘을 합쳐 생활인구 관련 센터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활인구란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주민등록지 이외의 지역을 방문해 체류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인 사람 등을 포함한다.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1월 도입한 개념이다.

두 지역민이 힘을 합치게 된 계기도 생활인구다. 경북도와 고령군은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생활인구 유입을 목표로 ‘1시군-1생활인구 특화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을 통해 수도권 등 다른 지역 주민 70여명이 ‘한 달 살아보기’ 등을 통해 고령과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지자체가 주도한 사업이 종료되면서 수도권 주민과 고령 주민의 관계도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아쉬움을 느낀 일부 수도권 주민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시장 내 점포를 빌리기로 한 것이 ‘고령군 생활인구센터’의 출발이 됐다.

이번 사업을 기획·운영한 패스파인더의 김만희 대표는 “고령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수도권 주민이 고령으로 내려와 있는 동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시장 내 빈 점포를 알아보던 중 고령군이 시장 내에 직접 보유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민들을 위한 잠자리는 지역주민이 마련했다. 사용하지 않는 민박집이나 빈집 등 2곳을 활용해 수도권 주민이 고령에 머무는 동안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기업 임원·교사·사진작가 등의 직업을 가진 수도권 주민들은 고령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역민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고령에서 나는 햅쌀인 ‘옥미’를 활용해 식혜를 만드는 풍경식혜 김주영 대표(25)는 “대기업에서 브랜딩이나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셨던 분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며 “사회 초년생이라 사업 경험이 부족했는데 다양한 방면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민 15명은 ‘고령딸기’ 조합원이 됐다. 조합의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더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생활인구 참여자들이 직접 쓴 글을 묶은 ‘고령에서 살아보기’ 가이드북도 출판했다.

고령군 생활인구센터는 앞으로 생활인구 유입 활성화뿐만 아니라 중장년의 인생 후반을 준비하는 50+캠퍼스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고령 생활인구 페스티벌 등 지역 축제를 만들고 사업과 관련된 교육 및 코칭 등 다양한 자문도 지원한다. 내년 초에는 수도권과 고령의 생활인구가 함께 참여하는 ‘생활인구 협동조합’도 만들 예정이다.

김 대표는 “지방은 사람이 없어져 소멸을 우려하고 서울에는 할 일이 없어 고민인 중장년이 넘쳐난다”며 “이들을 서로 연결해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넘어 팬슈머(‘팬’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의 결합)로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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