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이후 100만부 판매…‘기억의 힘’은 더 강해진다

박송이 기자 2024. 10. 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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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후 엿새 만에 ‘돌파’
품절 또 품절…뜨거운 ‘한강앓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이 엿새 만에 누적 기준으로 100만부 넘게 팔렸다.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마련된 한 작가 작품 매대에 소설 <소년이 온다>의 일시 품절 안내문이 적혀 있다. 권도현 기자
베스트셀러 1위 ‘소년이 온다’
“많이 읽어야 완성되는 소설”
작가 출간 당시 바람 이뤄져
“독자, 망각 불가능하게 할 것”
진은영 시인 등 문단계 찬사

“이 책은 많은 분이 읽어주셔야 완성이 되는 소설이라서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소년이 온다>가 출간됐을 때, 한강 작가가 한 말이다.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엿새 만인 16일, 그의 작품들은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대형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한 작가의 바람대로 수많은 사람이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됐다.

한 작가는 ‘완성’의 의미를 뚜렷이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말한 ‘완성’은 망각이 아닌 기억, 고통에 대한 직시, 애도의 지속, 존엄성의 회복일 것으로 짐작된다.

진은영 시인은 <소년이 온다>를 “망각과 싸우려는 소망으로 쓰인 책”이라고 설명했다. 진 시인은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 역사적 사건을 빈번하게 반복되는 왜곡, 조롱과 모욕으로부터 지키겠다는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동호, 정대, 정미와 같은 망자들을 그곳에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욕구로부터 쓰인 것 같다”며 “그러려면 일단 망각과 싸워야 한다. 망각과 싸우려는 소망으로 쓰인 이 책이 그 소망과 책임을 다하려면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 속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야 한다. 당연히 ‘많은 분이 읽어야 완성되는 소설’인 것”이라고 전했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2012년 겨울에 본격적으로 구상했다. 그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5·18민주화운동 왜곡·폄하·조롱의 여론이 퍼졌다. 5·18 때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됐다는 주장으로 명예훼손 고소를 당한 한 극우인사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다. 당시 재판부는 그의 왜곡은 인정했지만,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줬다.

김미정 문학평론가는 논문 ‘‘기억-정동’ 전쟁의 시대와 문학적 항쟁-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놓인 자리’에서 <소년이 온다>를 그 같은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고 존엄과 희망을 지키려는 당대의 바람이 투영된 작품으로 설명했다. 그는 “그들과 동시대를 사는 또 다른 우리는 그 야만을 돌파할 존엄에의 서사를 의식·무의식적으로 욕망한다”며 “역사를 망각하게 하고, 인간을 인간이 아니도록 추락시키고자 하는 힘은 늘 있어왔다. 그쪽이 더 압도적일지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증거하는 힘도 언제나 동시에 존재해왔다”고 밝혔다.

김 평론가는 한 작가가 말한 ‘완성’의 의미를 ‘존엄’의 맥락에서 찾았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 소설이 “우리에게 ‘존엄’이 무엇인지, 좀 더 나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작품은 인간이 단지 선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면서 “결국 더 나은 내가 표출될 수 있도록 이 세계의 구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읽게 된 지금, 망각이 아닌 기억, 야만이 아닌 존엄으로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진 시인은 ‘망각이 가능하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해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며 “한강의 독자들은 이제 망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너무나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진실을 지우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한강의 독자들은 역사의 이야기를 전하는 힘찬 목소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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