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의 킥이 된 ‘이븐’, 베테랑이 쓰는 언어의 맛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윤지혜 칼럼니스트 2024. 10. 1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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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에 끝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이 일으킨 큰 파장 중 하나로, 안성재 셰프의 '이븐(even)하게'를 꼽을 수 있을 테다.

이븐(even), '평평한, 고른, 균일한'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요리 분야에서 주로 음식의 모든 부분이 균일하게 익어 맛과 식감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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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성황리에 끝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이 일으킨 큰 파장 중 하나로, 안성재 셰프의 ‘이븐(even)하게’를 꼽을 수 있을 테다. 이븐(even), ‘평평한, 고른, 균일한’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요리 분야에서 주로 음식의 모든 부분이 균일하게 익어 맛과 식감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됐다.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즉, 해당 업종의 종사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문 용어로써 활용되었을 뿐이었는데, ‘흑백요리사’의 후광을 입고, 안성재 셰프의 입을 타고 순식간에 대다수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아 너나할 것 없이 입안에서 굴려보도록 만들었으니,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거나 다름없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어느 유명 플랫폼에선 ‘이븐’을 사용하여 안성재 셰프가 심사 볼 때의 말투로 후기를 남기는 사람이 수두룩해지고, 심지어 일상에서도, 분명 요리와 관련이 없는 영역에도 괜스레 ‘이븐’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부분 누군가의 전문성을 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로, 물론 농담조다.

도대체 ‘이븐’의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이토록 매혹했을까. 솔직히 ‘이븐’이 그렇게 특별한 단어는 아니다. 지난 4일 방영된 ‘나 혼자 산다’에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프랑스인인 마크 샤바노, 악기 장인에게 찾아가 바이올린을 수리하는 장면에서도 등장했으니까. 활줄을 교체하는 대목에서, 대니 구가 고르고 균일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간 주변에서 끊임없이 써 왔는데 이제야 존재감을 발휘하게 된 바는, ‘이븐’이 ‘흑백요리사’에서 획득한 어떠한 맛 때문일 터. 다름 아닌, 베테랑 또는 전문가가 쓰는 언어의 맛이다. 언어는, 단어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본래 가진 의미와 또 다른, 특별한 이미지를 덧입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 ‘베테랑’(2015)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의 ‘가오’가 있다.

이 ‘가오’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본래 있는 척 허세를 부린다는, ’폼(form)‘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힘깨나 쓰는 작자들 사이에서 통용되곤 했다. 그러나 ‘베테랑’에서, 제 집안의 재력만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고 마는 서도철 형사(황정민)를 통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과도 같은, 어쩌면 정체성과 직결될 수도 있는 자존심을 뜻하는 단어로 천만 관객, 그러니까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한마디로 승화된 것.

‘이븐’ 또한 마찬가지. 꾸준하고 성실하게 제 길을 닦아왔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고 있기까지 한 요리사, 셰프인 안성재가 ‘이븐’하게라고 하니 사람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주목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전문가의 혀는 다르게라도 생긴 건지 닿는 순간 음식의 맛과 완성도를, 조금의 놓침도 없이 파악하고 표현하는 모습에, 그가 발음하는 ’이븐‘에서 어떤 고아함마저 느꼈다고 하면 과언일까.

같은 단어, 말이라도 베테랑의 입에 올려지는 순간, 새로운 분위기 혹은 이미지가 덧입혀지며 듣는 이들에게 그 자체로 ‘킥’(비장의 한 수)이 되고 마는 게다. 단순히 요리의 세계에서 음식 재료의 익힘 정도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했던 ‘이븐’이 대중의 뇌리를 강하게 치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 하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etvidet@naver.com, 사진 = 넷플릭스 공식SNS, 안성재SNS]

안성재 | 이븐하게 | 흑백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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