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회와 맞짱 [책이 된 웹소설 : 폴란드 여왕 키우기]

김상훈 기자 2024. 10. 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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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여왕 키우기
강대국이었던 폴란드
발전 가로막는 귀족들
폴란드는 17세기 광대한 영토를 자랑했지만 1939년 독일과 소련 침공으로 사라졌었다.[사진=펙셀]

우리가 새로운 나라를 접할 때 느끼는 낯섦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다 그 나라와 공통점이나 연결고리를 발견할 때 낯섦은 친근함으로 바뀌곤 한다. 우리에게 폴란드는 그런 나라다.

1795년 폴란드는 다른 나라에 분할 점령돼 지도에서 사라지며 100년이 넘는 기간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겨우 독립했지만 불과 20년 만에 또다시 침략당했다. 1939년 독일과 소련의 침공으로 폴란드는 다시 사라지는 비극을 겪었다.

하지만 폴란드는 한때 동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었던 강대국이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유럽의 정세를 좌우했다.

강대국 폴란드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다가 마침내 멸망한다. 대체 이 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늘맛스낵' 작가의 「폴란드 여왕 키우기」는 쇠퇴기인 1690년 폴란드를 배경으로, 미래에서 온 남녀가 폴란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은 한국인 '정훈'이 프라하를 방문했다가 폴란드인 '엘라'를 만나며 시작한다. 둘은 취미부터 성격까지 어긋남이 없었고, 가족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전쟁 중 사망하는 등 가정 사정도 비슷했다.

두 사람은 이 만남에서 운명을 느끼고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정훈이 엘라에게 청혼한 날 폴란드는 러시아의 핵 공격을 받는다.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은 두 사람은 1690년 폴란드에서 깨어난다. 정훈은 자신의 몸으로 시간이동을, 엘라는 당시 폴란드 국왕의 딸로 빙의한 것이다.

정훈과 엘라는 갑작스러운 시간 이동과 생소한 환경에 혼란을 겪지만, 곧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각자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정훈은 현대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점차 영향력을 키워나간다. 엘라는 국왕의 딸로서 정치적 무대에 선다. 두 사람은 폴란드 쇠퇴를 막고 강대국으로 다시 일어서는 길을 찾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결심한다.

[사진=JHS BOOKS 제공]

작품은 국가경영과 발전, 전쟁에서의 승리 등 기본적인 재미 요소에 충실하다. 정훈과 엘라는 폴란드 경제를 재건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며 국가의 재부흥을 꿈꾼다. 특히 두 주인공의 현대적 지식이 과거 폴란드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지 보는 건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다.

또 다른 특징은 1690년 폴란드의 상황 그 자체다. 작품은 폴란드 쇠퇴의 원인 중 하나를 시대에 뒤처진 귀족의회로 지목한다.

이 빌어먹을 귀족 공화정에서는 리베룸 베토(Liberum Veto)라는 제도가 있었다. 직역하자면 '무제한 거부권'이었다. (중략) 슐라흐타 의원들은 그저 법안을 제안한 놈에게 빈정이 상해 있거나, 혹은 단순히 그날 배가 아파서 똥을 싸러 가고 싶거나 할 때도 리베룸 베토를 쓸 수가 있었다.
「폴란드 여왕 키우기」 중

의회의 만장일치제, 제한 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리베룸 베토, 정당하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고 큰 처벌도 받지 않는 로코슈(Rokosz) 등 당시 폴란드는 그 자체로 판타지 세계다. 수백년간 이어진 이 제도들은 주인공 입장에선 가장 큰 난관이다. 주인공들은 내부에서는 귀족들을 억제해 강력한 중앙권력을 세우고, 외부에서는 오스만 제국ㆍ스웨덴 등 강대국과 맞서 이겨야 한다. 「폴란드 여왕 키우기」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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