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한강 책 100만부 돌파
54세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리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한때 고은 시인 집 앞에서 수상자 발표날마다 취재진이 북새통을 이뤘던 걸 떠올리면, 머쓱하기도 하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나영이 이민 가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노벨상을 못 타잖아”라고 했던가. 그 아픔을 일거에 씻어준 게 한 작가의 엄청난 수상 소식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나라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던 우리의 오랜 숙원이 풀린 셈이다.
책방에선 한 작가의 책이 동났다. 출판사들은 밤새워 책을 찍어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노벨상 수상 발표 후 엿새 만에 주요 작품이 10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20~30대를 중심으로 독서하는 모습을 멋있게 여기는 ‘텍스트 힙’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 작가가 책방지기인 독립서점도 관심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작은 책방이 그렇듯 이곳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얼른 선택하기 어려웠던 그 책들을 손님이 만나게 된다. 그 반가운 순간들이 서점을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라고 했다. 책의 다양성을 지켜내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스마트폰에 빠져 모두가 책을 멀리하는 마당에 이 가을의 독서 열풍은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성인 중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43.0%에 그친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책을 읽고, 동네책방을 찾는 인구가 많아진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현실에선 지금처럼 ‘한강 특수’에도 유통망에서 소외된 작은 책방들은 판매할 책이 없어 ‘그림의 떡’이다. 일시적인 신드롬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선 출판시장 저변 확대에 정부가 더 힘써야 한다.
한강 작가는 미공개 원고를 2114년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노르웨이의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2019년 작가가 전한 원고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이다. 작가의 날카로운 글쓰기는 책읽기로 벼려졌다. 오랜만에 불어온 독서 열풍이 제2, 제3의 한강 작가가 나올 자양분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죽어 사라진 뒤 한강 작가의 미공개 작품을 읽을 후세들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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