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920년대 경성의 `우울한 밤거리` 탐방기

2024. 10. 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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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추운 길가서 잠자는 불쌍한 아이 만취해 "돈! 돈! 돈!" 청춘의 절규 박명(薄命) 미인, 기생과 창기들 서소문·소공동 뒷골목 차이나타운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더 진한 법이다. 1924년 9월 9일자 매일신보에 '밤 경성의 암흑면 탐방기'라는 연재 기사가 8번에 걸쳐 실렸다. 100년 전 화려한 불빛에 가려졌던 경성의 어두운 암흑을 한번 찾아 떠나 보자.

첫 번째는 '길가에서 잠자는 불쌍한 동무들'이란 제목의 1924년 9월 9일자 기사다. "환락의 경성! 밤의 서울은 단성사, 조선극장의 불빛이 꺼지면서부터 그 정체를 나타낸다. 종로경찰서 전기 시계가 새로 2시를 가리키면서부터 종로 일대의 번창하던 큰길은 조는 것 같이 잠잠해져 버린다. (중략) 암암(暗暗)을 깨치고 질주하는 기생 태운 자동차 소리, 남의 집 대문 앞에 쓰러져 코를 골고 자는 거지들의 잠꼬대 소리, 비틀거리고 가는 술주정꾼의 슬픈 하소연! 다만 이같이 종로 일대에 만연한 희비극의 관객은 파수 보는 순사밖에는 없는 것이다. 궂은비 내리던 9월 초일 밤 새벽 2시나 되어 밤의 서울을 탐방하고자 발길은 먼저 종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사는 계속된다. "한일은행 앞을 지나니 돌층계 위에 알몸뚱이만 눕히고 혼곤(昏困)히 잠들은 어린 동포가 있다. '저것이 오직 춥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돌연 전신에 작은 몸서리가 쳐진다. 한일은행에 돈이 산 같이 쌓이고 민영휘(閔泳徽)씨 집 창고에 쌀과 피륙이 썩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 어리고 가련한 손님을 위하여서는 밥 한 술, 옷 한 벌의 접대가 없으니, 그는 다만 밤마다 밤마다 꿈속에 왕래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밥 타령! 옷 타령이나 할 뿐일 것이다. (중략) 오! 때를 잘못 맞은 어린이여! 학대받는 친구여! 영원히 영원히 너는 그 꿈속에 들어 있기를… 그렇다, 그에게는 오히려 죽는 것이 한 가지 사는 길이 아닐까. 가뜩이나 편하지 못한 그의 새벽잠은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돈 자랑하는 오입쟁이들의 기생 실은 자동차 소리에 소스라쳐 깰 때가 많다. (후략)"

다음날에는 돈이 없어 자탄(自嘆)하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실린다. "옛 회포를 자아내는 종각을 돌아 종로경찰서 앞을 후줄근한 양복에 맥고(麥藁) 모자를 쓴 청년 한 사람과 파나마 모자에 모시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 한 사람이 술이 만취되어 넓은 길이 좁다 하며 비틀거리고 있다. 파나마 모자를 쓴 친구가 코 먹은 소리를 겨우 가다듬으며 '이 사람아! 기생은 우리보다는 훨씬 낫다네. 한 달에 5원씩 세금을 다 바치고…' 이 소리를 듣던 양복 입은 청년은 무슨 급한 연상에 가슴이 터지는 듯이 두 손을 가슴에 얼싸안으며 비통한 소리로, '오오!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돈을 주옵소서'하며 거의 울 듯이 음성이 흐려간다. (중략) 돈! 돈! 사람은 돈에 얽매어 살기 쉽고 더욱이 조선 사람에게는 돈이 남의 10배 100배 더욱 요긴하다. 효도에도 돈! 의리에도 돈! 밥에도 돈! 옷에도 돈! 나중에는 사랑에도 돈의 필요를 느끼기 쉬운 이 혼돈한 천지에서 이름 없는 이 청년의 한 마디 소리가 어찌 조선의 소리가 아니며 청춘의 절규가 아니겠는가. (중략). 아! 그러면 세상에 누가 가장 복 많은 사람이며 누가 제일 근심없는 사람이겠는가. 밤의 서울 한복판을 뚫고 왕래하는 취한 구고(舊故)나 꽃 같은 기생이나 인력거를 끄는 노동자나 행순(行巡)하는 순사나 설렁탕집 더부살이나, 생각하고 보면 모두가 책망할 여지조차 없는 불쌍한 사람이며, 가엾은 신세가 아닌가. 그래도 무슨 신기한 세월이 오리라고 순간을 기약할 수 없는 목숨을 참고서 힘에 부치는 생존 경쟁에 넋이 풀리고 살이 내려가는 그들은 눈물이 없이야 바라 볼 수 있을까! 밤의 서울! 그 속에는 항상 쓰린 기쁨과 안타까운 울음이 넘쳐 흐르는 것이다."

11일자 세 번째 암흑면에는 그늘에 피는 박명(薄命)한 미인, 즉 기생과 창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사동을 돌아서 관훈동 일대로 가면 속담에 부르는 고등학교(高燈學校)가 많다. '내외주점'이니 '별별 약주가'이니 골목 골목이 가장 염가(廉價)로써 미인과 주식(酒食)을 제공한다는 내외주점이 시내 각 처에 110호나 되며 205명이나 되는 그늘에 피는 꽃들은 분(粉)도 바르고 고운 옷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내외주점에 있는 미인들이야 말로 소위 그늘에 피는 꽃이 아니겠는가. 소리도 하고 술도 따르고 매음도 하면서 기생도 아니라 하며 창기도 아니라 하니, 그야말로 기울어져 가는 밤의 서울, 눈물을 자아내는 암흑의 세계의 여왕이 아니겠는가. (중략) '아주머니, 순배(巡杯) 갈아 주십시요!' 옳다, 저 소리야말로 내외술집을 위하여는 가장 복있는 소리요, 밑천 짧은 손님들에게는 목숨을 자르는 소리이다. (중략) 남 같으면 사랑이니 시집이니 하고 한참 고운 꿈 속에 싸여 살 어린 나이에 200~300원 돈에 희생이 되어 산 설고 물 설은 경성 천지에 그들은 즐겨서 술 주전자 장단을 치러 멀리 왔겠는가? 시내에 있는 250여 명의 웃음 파는 미인들의 오늘까지 밟아온 인생의 경로를 들을 때에는 얼마나 비참한 애사(哀史)가 많이 쌓여 있을까? 부모의 물욕(物慾)에 희생된 이, 사랑을 믿다가 구렁에 빠진 이, 남의 유인에 몸이 얽매이게 된 이, 그들은 모조리 밤이면 밤마다 모든 애화(哀話)와 온갖 하소연을 다만 마음에 없는 술 장단으로 그날그날을 보내는 것이니, 웃음과 노래에 싸인 주석(酒席)에 이같은 비극은 항상 등 뒤에서 넘겨다 보고 있는 것이다."

12일자 네 번째 암흑면 탐방기는 조선인 소녀를 팔고 사는 중국인 소굴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시내건마는 서소문정과 장곡천정(소공동) 일대 중국인 촌에서는 밤낮 없이 음습한 바람이 불고 속 모르는 공포가 잠겨 있다. 더욱이 밤을 맞이하는 중국인 촌에는 아편침 등 세상에도 음담한 죄악의 문은 무겁게 열리는 것이다. 본시가 음흉한 것이 그들의 국민성이나 경찰이 있고 교회가 있는 대도시 한복판에 이같은 마굴(魔窟)이 있다는 것은 한 특장(特長)이라면 모르겠으나 결코 명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중추원 뒤 중국인 부락의 사이 골목을 들어서면 중국인에게 시집가서 그들의 만행을 일과로 겪고 사는 가련한 조선 여자들이 사는 돼지우리가 몇 채씩 있다. 이곳이야말로 한 달에도 몇 번씩 신문에 떠드는 인신매매가 숨어있는 중앙시장인 줄을 누가 알겠는가. (중략) 장래에 미인이 될 희망이 있는 5~6세, 7~8세 소녀를 보면 반드시 몇 해 후에 중국 시장에서 500~600원 이상 1,000원 내외의 막대한 시세가 붙을 것을 생각하고 그들은 세상 일에 어두운 그 부모를 꾀어서 몇십 원 돈에 사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밑천도 안 들이고 소녀를 꼬여서 업고 도망을 하는 것이 상사(常事)이다. 그리하여 중국인의 품에 돌아간 가련한 아이들은 마침내 중앙시장인 경성으로 집중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팔려 가고 넘어가서 나중에는 부모와 고향을 멀리 떠나 꽃 빛 못 보는 만주 벌판으로 실려 가고 마는 것이다. 역사가 있은 이래로 이같은 경로를 밟아 무참한 비경(悲境)에 빠진 어린 동포의 수는 실로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은 다만 한 지방 한 개인의 작은 문제로 부치고 말 것인지 반드시 마음있는 이는 깊이 생각할 바인가 한다. (중략) 갖은 죄악에 쌓인 이 특수 부락을 경찰에서는 어찌나 보는가. 때로 형사들이 소일삼아 와서 기웃거리면 언제든지 몇 놈씩은 잡아가게 되는 이 부락을 어찌나 처치하려는가. 대도시 중앙에 이같은 마굴을 둔 시민은 결코 안심을 하고 지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인민을 매매하는 자를 오래 취급하던 본정경찰서 오(吳)경부조차 '하는 수 없습니다. 다만 민지(民智)가 더욱 발달되어서 일반 민중이 그같은 중국인에게 넘어가지 않기나 바랄 뿐이지 다른 양책(良策)은 없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니, 과연 그 민지(民智)가 발달될 날은 어느 때이겠는지. 천진난만한 어린 얘기. 네가 너무나 애처롭지 않은가."

지금은 굶주리는 사람들은 없지만, 화려한 불빛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암흑면은 여전히 존재한다. 100년 전에 없었던 새로운 암흑면이 활개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으로 이 어두운 곳을 환하게 밝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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