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의 이면] ‘한강’의 역류, 정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환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한강이다.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때 문학의 희망을 다시 열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환호할 만한 사건이다. 개인적으론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이 가장 빛난 결과가 ‘한강’이라는 점이 특히 반갑고 고마웠다. 2016년 밥 딜런 수상에서 보듯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은 한 사회의 무의식과 호흡하고, 세계를 변혁하려는 모든 노력에 대한 애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한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기존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과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가해, 피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5·18을 삶의 상처로 승화시켰다. 2009년 1월 용산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며 “저건 광주잖아”라고 한 에필로그, 죽은 열여섯 살 소년 동호가 엄마에게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라고 한 부분을 보자. 국가폭력의 구조와 가해자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폭력 앞에서도 숭고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소설엔 살아남은 누나와 누나 친구들도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자로 짐작된다. 악몽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중간에 한번 질문 형식으로 쓰여졌다. 마치 당사자가 된 듯한 작가의 통증이 느껴졌다. 이 여성들에게 5·18이란 총을 쏠 수 없는 자와 총을 쏠 수 있는 자를 가르는 싸움 아니냐는 완곡한 물음이었다. 여성들은 지독한 고통에도 죽은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못해 사는 내내 자신들의 삶이 장례였다며, 동생의 죽음이 살아남은 모두의 아픔이라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이처럼 국가폭력에 가려진 고통의 개별성과 마주하게 했고, 고통의 개별성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힘이라는 걸 알게 했고, 이 과정은 온전히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한 여성, 영혜의 이야기다. 왜 육식을 거부했는지 영혜의 설명은 없다. 대신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 등 주변 인물들이 불편한 시선으로 영혜를 대하는 스토리텔러로 등장한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하는 아버지도 있다. 그러고 보면 <채식주의자>란 제목은 육식(착취) 사회에서 식탁(가부장제)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을 불온한 존재로 몰기 위한 명사일 수도,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데 대한 저항의 명칭일 수도 있다. 한 작가는 이어진 소설 <나무 불꽃>에서 “햇빛만 있으면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된다”며 나무가 되려는 영혜의 모습을 그렸다. 육식 강권 사회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굶어죽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영혜를 보며 페미니즘이 역사적(일상적)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그건 여성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여성을 더 이상 수동태로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더 놀라웠던 건 지금 직면한 문제들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일상에서 깨닫는,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페미니즘의 자세를 작가가 견지했다는 점이다. 한 작가는 “전쟁 비극에 무슨 잔치냐”며 수상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페미니즘이 두 번째 휴머니즘인 이유를, 한 작가는 인류에 대한 예의가 담긴 이 한마디로 풀어냈다.
한 작가 수상은 탈근대(개별성, 다양성), 보편성 획득으로 평가된다. 진작 정치가 할 일이었다. 근대가 무엇인가. 우리가 국가 공동체를 만들고, 주권자가 되어 서로 돕자는 약속 아니던가. 그러나 그 약속은 번번이 소수자와 약자들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은폐했다. 이를 되돌려야 할 정치는 오히려 근대의 무기인 대결 담론으로 무장한 채 이들에 대한 근대의 배반을 외면했다. 양극화 정치는 갈수록 틈이 커지고 있고, 같은 진영 내에서도 다양성이 설 자리는 없다. 명태균이라는 룸펜프롤레타리아(황금만능주의에 찌든 무리)에 휘둘리는 여권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한 작가 수상에 “고은, 황석영이 먼저 받았어야 할 상”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도 들린다. 뉴욕타임스는 “나이 든 남성 작가만이 노벨상 후보라 보고 있나”라며 이런 억지담론에 일침을 놓았다. 탈근대가 버겁다면 역사적 트라우마의 보편성이라도 얻으려 노력하는 게 마땅하건만 정치는 그마저도 포기했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은 아직도 헌법 전문에 없다. 심지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망언을 또다시 쏟아냈다.
한 작가는 16일 스웨덴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한강’이라는 새 물결에 정치의 역류가 계속되는 한, 정치를 향한 한 작가의 질문도 계속될 것이다. 정치는 무어라 답하며 ‘한강’의 물줄기에 합류할 텐가.
구혜영 정치부문장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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