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적 뒷담화 [김상균의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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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사회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혼자만 잘났잖아요. 실력은 모르겠는데 성격에 문제가 있어요. 주변 사람을 잘 안 챙겨요. 학생 지도는 안 하고 돈벌이만 신경 써요.' 다른 교수에 관한 험담을 내게 전하는 상황이다.
험담 내용만으로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ㄱ 교수가 ㄴ 교수에 관한 험담을 내게 전하면, 얼마 후 ㄴ 교수는 ㄱ 교수에 관한 험담을 전해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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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교수 사회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혼자만 잘났잖아요. 실력은 모르겠는데 성격에 문제가 있어요. 주변 사람을 잘 안 챙겨요. 학생 지도는 안 하고 돈벌이만 신경 써요.’ 다른 교수에 관한 험담을 내게 전하는 상황이다. 이런 험담의 결정판은 이것이다. ‘학내에서 그 사람에 관한 얘기가 참 많아요.’ 여기서 언급된 ‘얘기’는 당연히 칭찬이나 미담이 아니라 험담이다. ‘참 많아요’라는 묘사를 통해 그 험담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나는 이런 험담 내용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험담 내용만으로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학내 교수 상당수가 이런 험담의 대상자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ㄱ 교수가 ㄴ 교수에 관한 험담을 내게 전하면, 얼마 후 ㄴ 교수는 ㄱ 교수에 관한 험담을 전해주는 식이다.
험담 내용에는 큰 관심이 안 가지만,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첫째, 험담 대상자로 자주 등장하는 이의 조직 내 영향력이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런 인물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히어로 또는 빌런이다. 초능력 인간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영웅이 히어로이고, 히어로에 대적하는 악당을 빌런이라 부른다.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험담 대상에 오르내리지만, 그중에서도 등장 빈도가 높은 이라면 그는 조직 내 이야기에서 주연이다. 히어로 또는 빌런일 확률이 높다. 좋은 쪽으로 건 나쁜 쪽으로 건 그 사람의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이다. 둘째, 험담을 풀어놓는 이의 사연이 궁금하다. 사람들은 히어로와 빌런, 둘 다 욕한다. 영화 속에서는 히어로를 찬양하지만, 현실에서는 히어로를 놓고도 부러워서 욕하고, 히어로에게 더 큰 것을 기대하며 욕한다. 빌런을 놓고는 분노해서 욕한다. 욕하는 이의 마음속에 부러움, 기대, 분노 중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런 감정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본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행동과 언어의 이면을 살피는 인지과학자의 습성이다.
이런 두 성찰은 꽤 의미가 있다. 그런 험담에 단순히 동참해서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후련해하기보다는 말이다. 조직 내 영향력 구도를 알 수 있고, 나와 대화하는 이의 내적 욕망과 결핍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성찰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통한다. 때로는 조직 내에서 떠도는 나에 관한 뒷담화, 험담이 들리기도 한다.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한다는 말머리로, 누군가가 나에 관한 뒷담화를 내게 직접 들려주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침울해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성찰해 보자. 조직 구성원들이 내적으로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부분에 결핍이 있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조직 내에서 나는 히어로 또는 빌런, 어느 쪽에 가까운지 말이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른 구성원의 마음을 살피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침울함과 분노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성찰을 통해 우리는 조직과 자신을 동시에 다른 시선으로, 메타 인지적 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얘기를 강연장에서 들려줬더니 한 청중이 물었다. 자신은 회사에서 빌런도 히어로도 아니고, 둘을 합쳐서 ‘빌어로’이고 싶다고. 영웅과 악당의 양면을 다 품고 사는 게 더 인간답고 속 편하다는 말일 테다. 뒷담화를 통해 조직과 자신을 온전히 성찰할 수 있다면, 빌어로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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