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꿈의 신소재’ 그래핀 상용화 나선 과학자의 두 번째 호소
올해는 그래핀이 발견된 지 20년 되는 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연결돼 2차원 평면을 이룬 단순한 형태지만, 얇고도 강하면서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해 ‘꿈의 신소재’로 불렸다. 오랜 연구 끝에 그래핀 상용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은 그래핀 대량생산과 상용화에서 선두에 서 있다. 홍병희 서울대 화학부 교수 세계 최초로 화학기상증착법(CVD)으로 그래핀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원료를 가스로 주입하고 고온 화학반응으로 기판에 필름형태로 증착시키는 기술이다. 홍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은 그래핀 상용화 속도는 최고 수준”이라며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래핀 분야는 2013년 지식경제부 R&D(연구개발)전략기획단 사업 ‘그래핀 소재·부품 상용화 기술개발사업’과 2016년 그래핀 사업화 촉진 기술 로드맵을 바탕으로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홍 교수는 이 초기 지원이 연구에 불을 붙이는 시드머니(종잣돈)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그래핀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2차원 소재에 대한 지원도 뒤따르면서 산업 생태계가 더욱 확장됐다. 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도 수출지원과 인력 지원,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며 산업 성장을 돕고 있다.
정부가 그래핀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에는 홍 교수가 대통령에게 편지로 한 호소도 한 역할을 했다. 홍 교수가 세운 그래핀스퀘어는 작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에서 ‘그래핀 라디에이터’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홍 교수는 다음 달 대통령실에서 열린 ‘CES 디지털 기술혁신 기업인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는 ‘벤처기업에는 시간이 돈이다. 규제와 절차에 묶여 사업 진행이 늦어지면 생존이 어려워진다. 벤처기업의 혁신을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담았다. 대통령실이 이 편지를 적극 검토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졌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이 풀린 건 아니다. 그래핀스퀘어는 수도권이 아닌 경북 포항에 양산 공장을 짓고 있다. 홍 교수는 “여전히 규제에 묶이는 부분이 많아 과감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며 “그래핀은 생산 과정에서 큰 환경 오염을 일으키지 않지만, 구리와 산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수도권에 공장을 설립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규제가 지방 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신소재 산업의 성장이나 인력 유입에는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보조금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방 투자 촉진 보조금을 신청하는 단계에 있긴 하지만, 그래핀과 같은 신소재 산업에 특화된 보조금이나 맞춤형 인센티브(성과금)가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해외에서 신소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보조금과 같은 지원이 국내에도 도입된다면 그래핀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은 ‘그래핀 굴기(崛起·우뚝 일어섬)’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그래핀 투자를 추진했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그래핀 분야에서 앞선 나라가 됐다. 2010년대 중국 중앙 정부가 제정, 발표한 그래핀 산업 관련 지원 정책 40건을 포함한 정책 약 230건이 중국의 도약에 큰 기반이 됐다. 중국 정부의 지원 정책은 그래핀 소재 표준화부터 시리즈화, 원가 저렴화 등 산업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들도 포함하고 있다.
작년 2월 홍 교수의 첫 번째 편지가 세계 최초의 그래핀 양산 공장 건설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그래핀 산업화를 위해 정부가 두 팔을 걷어 붙일 때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유연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때, 꿈의 신소재 그래핀은 마침내 ‘꿈’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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