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들 "토론은 우리 방식 투쟁…의정대화 이어져야"
"왜 한가하게 지금 토론을 하냐고요? 브레이크까지는 아니어도 의료개혁이라는 폭주기관차 바퀴를 조금이나마 돌리려는 저희 방식의 투쟁입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5일 대통령실·보건복지부와의 공개 토론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10일 비대위가 주최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는 정부 측 패널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이 참여했다.
8개월째 이어지는 의료 공백 사태와 의정 갈등 속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의료계와 한자리에서 대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토론회를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는 "토론이 아니라 투쟁할 때"라는 지적이나 "정부에 대화했다는 명분만 주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기도의사회는 "의료 농단 주범들과 야합하는 이적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비대위는 이러한 비판과 회의적 시각에 "이해는 한다"면서도 "각자 선 자리에서 여러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승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사 집단 내부에서도 현 사태 대응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 토론회는 저희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었다"며 "집회 등 다른 방식이나 토론회 중 무엇이 맞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하필 지금, 토론회인가"라는 질문에는 "정부가 폭주기관차처럼 속도를 내고 있는 '의료개혁'의 바퀴를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 교수는 "이미 정부는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에 신경쓰지 않고 의료계와 무관하게 빠르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누군가는 나중에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이 되도록 이에 개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곽재건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토론회도 다른 투쟁 방식과 마찬가지로 의대생·전공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토론회에서 다룬 것들은 당장 논의되고 개선돼야 할 절박한 문제들로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이게 해결돼야 '돌아갈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이 빈손으로 끝났다는 비판에 대해 비대위는 "핵심 책임자와 대면해서 직접 이야기했다는 점을 봐달라"고 말했다.
한세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그간 여러 차례 성명도 내고 심포지엄도 했지만 정부가 듣기는 했는지, 기사는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또 "의료계 곳곳에서 정부의 의료 정책 비판을 이어갔지만 모두 산발적이었고 책임자에게 대면으로 직접 이야기한 적은 드물었다"며 "성과를 떠나서 정부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만나서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승원 교수는 "정부는 회의록도 없는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료계와 협의했다고 주장해 왔다"며 "그러한 의정 대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생중계 공개 토론이었다는 것이고,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투명한 대화의 틀을 만들어서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의료계의 현실에 대해 안일하게 또는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많고 사태 수습을 엉망으로 하고 있다"며 의료계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세원 교수는 "정경실 단장이 2035년까지 10년의 '골든타임' 안에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기에 한탄했다"며 "골든타임이 10년이라고 생각하다니 안일하다. 지금은 전공의 등에 의해 유지되던 의료계의 인공호흡기를 떼버린 상태"라고 경고했다.
배우경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 측 발언 중엔 바로잡아야 할 틀린 내용도 있었다"며 "장 수석은 기존 연구에 의사가 똑같이 90살까지 일한다든지 하는 비현실적 가정이 있다고 주장하며 의대 정원을 4000명으로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했는데, 실제 해당 연구 보고서를 찾아보니 그런 가정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오일영 순환기내과 교수는 "2천명 증원의 여파도 큰데 정부의 수습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며 "권한에 따라 승인한 휴학에 감사를 실시한다든가 오랜 시간에 걸쳐 확립된 의대 교육 과정을 사태 수습을 위해 멋대로 변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비대위는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의정 간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재건 교수는 "시작은 우리가 했지만 의료계에서 누구라도 나서 정부와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위한 의료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일영 교수는 "토론회에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라면서도 "고착화된 상황에 의료계가 적응하며 흐지부지 이 사태가 내년까지 무한정 길어지면 어떡하나. 흐름을 바꾸려면 정부에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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