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누비며 동네 이해하고 행사 기획… 아이들 “우리도 어엿한 주민”[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공동체 경험 적은 초등생 위해
8개월간 장기 프로젝트 진행
어울려 사는 가치 깨닫게 도와
“우리 가족·집밖에 몰랐었는데
이웃 아줌마·아저씨도 좋아져”
“또래 친구들이랑 지속적으로 만나고 어울려본 경험이 없는데, 정릉수비대를 통해 어린이로서 지역에서 역할을 다할 수 있어 뿌듯해요.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역에 대해 이해하고, 친구들과 어른들한테 동네를 소개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생겼어요.”
초록우산과 서울 성북구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이 진행하는 ‘정릉수비대’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학교 6학년 송모 양에게 소감을 묻자마자 나온 첫마디다. 정릉수비대 프로그램은 지난 4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이웃과의 관계 경험도 부족한 아이들의 발달을 증진하기 위해 시작됐다. 송모 양을 포함한 어린이 27명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지역에 대해 더 알게 됐다”며 “우리 동네가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일상 회복을 위해 공동체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어린이들은 공동체적 경험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1년 10월 전국 시·도 초등학생 29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49.2%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TV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증가했고, 42.8%가 코로나19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답했다. ‘동네생활연구소 한;평’에서 지난해 8월 정릉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3학년 공모 양은 “이웃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초등학교 5학년 하모 양도 “그냥 아는 사람들이랑만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집 앞에서 이웃과 마주쳐도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웃과의 교류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걱정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이들이 이전 세대처럼 이웃과 어울리며 더불어 사는 가치를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바람이다. 공모 양의 어머니는 “이웃 간 가깝게 지내고 서로 알던 나의 어릴 적처럼 아이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모 양의 어머니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며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모여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결과를 받아든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내 아동·청소년들에게 코로나19 시기 팽배했던 개인주의에서 벗어날 기회가 잘 주어지고 있는지 점검하기로 했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이 8개월 동안 진행하고 있는 정릉수비대 사업은 이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아이들이 동네를 탐방하게 하고, 직접 지역의 행사를 기획해보며 같은 지역에서 공간과 정서를 공유하는 주민들과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돌볼 수 있으며 공공복지의 틈새인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예방할 수 있다고 복지관 측은 밝혔다.
복지관만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은 ‘정릉축제재밌당’ 등을 비롯한 지역의 기관 및 단체들과 함께 업무협약을 맺고, 기관들 간 상호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4월 성북구 정릉·성북동에 거주하고 있는 아동 27명과 함께 동네 구석구석을 함께 탐방하는 것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 이뤄지는 행사에 참여해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아이들이 기획할 행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함께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하는 ‘함께그린정릉’, 동네 한편에 친환경 텃밭을 운영하는 ‘우당퉁탕골목텃밭’ 등의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활동은 어린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축제기획단’이다. 6월 15일 성북구에서 진행된 ‘2024 정릉더하기축제-마을이 놀이터다’에서 아이들은 ‘우리 모두 권리가 있어요 부스’ ‘아동노동실태 체험 부스’ 등 다양한 부스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 준비를 위해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답사를 가는가 하면, ‘놀 권리’에 대한 토의를 벌이는 등 다방면의 준비에 직접 참여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여 학생 전모(11) 군은 “정릉더하기축제에서 내가 직접 부스를 준비하고, 축제도 같이 기획하니까 진짜 어른들처럼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며 “이웃 어른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재밌었다”고 전했다. 김모(9) 양은 “반찬을 옆집 사람 혹은 필요한 사람들한테 나누고 싶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이웃이니까 그런 나눔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가족이 제일 좋고 우리 집도 좋지만, 우리 동네 또한 좋고 옆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랑 친구들도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릉수비대 사업 담당자는 “정릉수비대는 단순한 아동 참여 프로그램을 넘어 아동들이 지역사회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라며 “공동체를 경험해본 세대와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가 살아가고 만들어가는 사회 문화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11월에 있을 성과공유회로 이번 정릉수비대 활동을 돌아보며 내년 정릉수비대 활동을 더욱 알차게 준비하려 한다”며 “내년에는 기존에 참여했던 친구들과 새롭게 참여한 친구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아동들의 지역 소속감을 높이고 공동체성을 찾아가는 활동을 계속해서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린아 기자 linay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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