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밤을 지나서”… ‘작가 한강’의 탄생 [심층기획-논픽션 한강 격류 제3화]

김용출 2024. 10. 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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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조용하고 차분했던 것 같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당시 자신의 시창작론 강의를 들었던 대학생 한강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고민과 함께 문학으로의 길을 동시에 찾아왔던 사춘기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푸르디푸른 대학 생활이 육박해 있었다. 1989년 서울 신촌에 자리한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사춘기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그는, 확 달라져 있었다. “순진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면, 환경이 바뀔 때마다 빨리 적응하는 편”(「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에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한강이 연세대 재학 중 시창작론을 강의한 정현종 시인. 세계일보 자료사진
#“무당 같은 게 보인다”…시로, 소설의 세계로

“무슨 무당(기) 같은 게 보인다야.” 한강의 시를 낭송한 뒤, 강의를 맡고 있던 정 시인이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칭찬이었다. 어떤 알 수 없지만, 신들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정 시인은 당시를 부연해 들려주었다. “무슨 무당 같은 데가 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한강의 시가 신들린 것 같은 데가 있다고 내가 느낀 모양이어서 그 얘기를 해줬어요. 무당 같은 데가 있다, 그거 한 마디 한 것밖에 다른 건 또 없어요.”

그는 대학 2학년 때 정 시인의 시 창작론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학생들이 각자 써온 작품 가운데 두 편씩 골라 복사해 나눠주고 낭송하면서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정 시인이 첫 시간에 그의 시를 읽어 주고 촌평을 해줬다.

그 후 반응을 묻자, 정 시인은 한강이 원래 조용한 성격이라서 자신의 그런 평가를 듣고도 차분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당시 한강의 내면 풍경은 달랐다. 그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에게는 큰 힘이 된 말씀이었다”(「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고.

대학 시절, 한강은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직접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됐다. 당시 자신의 마음을 그는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어느 순간 나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꿈꾸는 소설이었다. 결국 내가 꿈꾸는 방식의 소설은 내가 쓸 수밖에 없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며 쓰기 시작했다.”(「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왜 글쓰기, 더구나 소설 쓰기였을까. 글쓰기는 답을 제시하는 것일 수 있지만, 때로는 질문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질문을 가지고 서성거렸던 그에게 글쓰기는 질문의 유력한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사춘기 이후로 늘 질문이 많았어요. 나는 누구인가부터 왜 태어나서 왜 죽는 걸까, 고통은 왜 있나, 나는 뭐 할 수 있지, 인간이란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이 늘 괴로웠고요. 그걸 질문하는 방식이 글을 쓰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죠.”(신연선·오은, 2021. 9. 23)

#“잘 지내셨는지”…시 「편지」로 연세문화상 수상

“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 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편지」 부문)

졸업을 앞둔 1992년 가을, 대학 4학년생 한강은 일종의 대학문학상인 ‘연세문화상’의 시 부문에 응모했다. 시 「편지」는 삭막한 시절의 안부를 예의를 갖춰 묻는 편지와 그 편지 사이에 응고되지 않는 감정의 흔적을 절묘하게 배치한 작품이었다.
사진=연세대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 ···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편지」 부문)

한강은 시 「편지」로 연세문화상에 당선됐고, 당선작은 『연세춘추』 11월 23일자에 게재됐다. 심사를 담당했던 정 교수와 김사인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들이 “굿판의 무당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한다고 평가했다.

“당선작 「편지」를 비롯해 한강의 작품들은 모두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굿판의 무당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그러한 불과 같은 열정의 덩어리는 무슨 선명한 조각과 또 달리, 앞으로 빚어질 어떤 모습들이 풍부히 들어 있는 에너지로 보인다. 능란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그 잠재력이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고나린, 2024.10.12)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문청으로

“헬로!” 최인호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외쳤다. 그는 사무실 안으로 활기차게 걸어 들어오면서 모든 직원들에게 손을 들어 올리거나 인사했다. “경옥씨 헤어스타일이 바뀌었어요? 야, 오랜만이야, 최 차장!” 그러다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인 그에게 시선이 멈췄다. “춘향이가 들어왔네!”

책 『길 없는 길』의 마지막 교정을 보기 위해서 서울 동숭동 샘터사 사무실에 온 최인호는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말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땋고 앉아서 교정을 보던 수습사원 한강의 첫인상이 재미있었던지, 그가 퇴사할 때까지 춘향이라고 불렀다. 최인호는 언젠가 진실을 담은 눈으로 말하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대학을 졸업할 즈음 잡지 『샘터』를 발간하는 샘터사 출판부에 입사한 그는 1993년 신입사원으로서 교정 교열과 필자 관리 외에도 여러 잡다한 일을 했다. 아침 청소, 복사, 우체국과 은행 심부름 등등. 회사를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타는 일도.

낮에는 직원으로 일하고, 퇴근해선 잠을 줄여가며 읽고 썼다. 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퇴근하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가파른 골목길을 뛰어올라가기도 했다. “늘 졸리고 피곤했지만, 대충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켜면 몸에 환한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그는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글을 썼다. 대외적으로는 시 쓰는 사람이었지만, 안으로는 몰래 소설을 쓰는 문학청년이었다.

한강의 등단작 「붉은 닻」이 담겨 있는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글을 쓰는 순간,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늦가을 어느 날, 그는 사무실 직원들과 영종도로 수련회에 갔다. 해질 무렵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펄에 녹슨 닻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풍경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그에게 들어왔다(김유태, 2024.10.11).

늦가을 황혼을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잘 쓸 수 있을까. 중간에 회의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는 게 너무나 절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매일 새벽 4시면 어김 없이 일어나서 글을 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사무실 창으로 붉은 저녁 빛이 내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소설의 배경이 된 어두운 폐고 앞의 골목에서 밤늦도록 서성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의 순순한 충일감을 잊지 못한다. 세상의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어느 것도 욕심나지 않았다. 그저 남몰래 가진 글쓰기의 기쁨을 평생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생생하게, 절실하게 그리고 단단하게.”(「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습작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읽어 봐 달라고 한 번도 아버지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아버지 한승원 역시 딸에게 소설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승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흔히 아들이나 딸 한강의 습작시절에 아버지가 그들의 작품을 많이 지도해 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저에게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몰래 습작을 했던 것이죠.”

아버지 한승원은 딸 한강에게 소설에 대한 말은 아꼈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내 식으로 쓰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말을 아주 아낀다”며 “(딸 한강의) 소설을 읽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재미있더라’, 그렇게만 말한다”(김재선, 2016.5.17)고 말했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붉은 닻」으로 소설가로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서울의 겨울」 전문)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 「서울의 겨울」. 한강은 「서울의 겨울」를 비롯해 다섯 편의 시를 계간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발표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어서 이듬해 초 단편소설 「붉은 닻」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등단작 「붉은 닻」은 아버지의 죽음과 이로 인해 남겨진 어머니와 동식과 동영 형제의 상실과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매일 술로 지새던 아버지는 한 짝의 신발로 돌아오고, 나머지 가족은 큰 상처를 입는다. 동영이 군에서 제대한 뒤 어느 날 어머니의 제안으로 주말여행을 나서고, 세 모자는 갯벌을 가득 채운 녹슨 붉은 닻들과 마주친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김병익과 소설가 서기원은 신문에 실린 심사평에서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어서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앓아온 형과 동생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 사라진 남편 대신 그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섬세한 문장 속에 깊이 박혀 잔잔한 긴장과 화해의 밝은 전망을 유발시킨다“(윤수경, 2024.10.14)고 분석했다.

최인호 작가는 그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하면서 비어 있던 주간실에서 신문에 실린 당선작을 다 읽은 뒤 그에게 작품에 대해 촌평해 주기도 했다. “참 어두운 이야기다. 그런데 후반부에선 이 어두운 가족이 바다로 소풍을 가는구나. 그게 나는 참 좋더라.”(「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아파서 쓴 것인지, 씀으로 해서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프면서 썼다. 밤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 새벽은 늘 여지없었다. 어둠의 여지없음만큼이나 지독한 힘이었다.”

한강은 당선소감에서 작품을 쓰기 위해서 노력한 지난 시절을 이 같이 회고한 뒤, “무릎이 꺾인다 해도 그 꺾이는 무릎으로 다시 한 발자국 내딛는 용기를 이제부터 배워야 하리라”고 다짐했다.

마침내 한강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무대에 올랐다. 등단 당시 그가 사용한 필명은 ‘한강현’. 하지만 다음 작품부터 그는 본명 한강을 사용했다. 마침내 ‘작가 한강’이 우리에게 뚜벅뚜벅 걸어 나오기 시작하던 순간이었다.(→제4화에 계속)

*참고문헌은 연재가 끝난 뒤 정리해 일괄 게시 예정입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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