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서 제맛 살린 한식으로 ‘대활약’…이영숙 셰프의 ‘비밀병기’는?

황지원 기자 2024. 10.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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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생] (35) ‘흑백요리사’ 출연…버섯농사 짓는 이영숙 셰프
손주 권유로 출연 경연프로그램서 활약 빛나
1대1 대결때 선보인 ‘미소곰탕’ 만장일치 승리
부여 특산물 표고버섯 활용 다양한 요리 개발
장소 옮길 식당서 ‘시래기 닭찜’ 등 선보일 계획
인기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에 출연해 한식의 멋을 선보인 이영숙 셰프가 직접 재배한 표고버섯을 보여주며 밝게 웃고 있다.

숱한 화제를 낳으며 8일 종영한 넷플릭스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이영숙 셰프(68)는 100명의 참가자 중 최고령으로, 양식·중식·일식 셰프들을 상대로 한식의 멋을 선보이며 활약했다. 이미 이 셰프는 2014년 전국 팔도 고수들이 모여 대결을 펼친 올리브 요리 경연 예능 ‘한식대첩2’에서 충남 대표로 출전해 우승한 경력이 있다. 충남 부여에서 버섯농사를 지으며 버섯전골 전문점 ‘나경버섯’을 운영하는 이 셰프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넷플릭스에 있는 프로그램들을 본 적도 없었어요. 처음엔 나이가 많아서 민폐가 될까 봐 출연 제의를 고사했죠. 고등학교 2학년인 손주가 한번 나가보라고 용기를 줘 출연하게 됐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보인 이 셰프의 활약은 대단했다. 먼저 그는 한우 우둔살을 활용한 요리로 최연소 셰프와 1대1 대결을 펼쳤다. 얇게 썬 우둔살로 미나리를 돌돌 만 후 달걀물을 묻혀 부치고, 무·표고버섯·다시마·들기름으로 만든 채수와 함께 담아낸 ‘미소곰탕’을 만들었다. 먹었을 때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는 뜻을 담아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음식을 맛본 백종원과 안성재 등 2명의 심사위원은 만장일치로 이 셰프의 손을 들었다. 이 셰프는 “맛에서는 자신 있기 때문에 대결에서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다”고 전했다.

직접 농사지은 표고버섯을 넣은 버섯전골.

상승세던 이 셰프는 준결승 대결을 앞두고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준결승 미션 주제는 ‘자신의 인생을 단 하나의 요리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 셰프에게 준결승에 올라갔다면 어떤 요리를 선보였을지 물어봤다. 그가 생각한 메뉴는 ‘시래기 닭찜’. 15살 차이가 나는 요절한 막냇동생과의 추억이 깃든 메뉴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이에요. 예전에는 닭고기로만 배불리 먹을 수 없었잖아요. 시래기까지 넣어서 푸짐하게 먹었던 거죠. 제 형제가 5남1녀예요. 형들이 먼저 닭다리를 다 집어가면 막내는 구석에 앉아서 ‘나는 먹을 게 없다’며 울었어요. 형들은 ‘그런 걸 가지고 우냐’며 지청구를 놨죠.”

커서는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하면 이 셰프가 시래기 닭찜을 해주며 ‘이젠 닭다리를 실컷 먹으라’고 농담을 나누곤 했다. 평생 시래기 닭찜을 해주고 싶었는데 동생은 29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이후론 동생 생각이 나 20년 넘게 시래기 닭찜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흑백요리사’를 계기로 더이상 이 요리를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8월엔 밭에 무를 새로 심었다. 그 밭에서 키운 무의 무청을 말려낸 시래기로 요리해볼 생각이다. 올겨울 장소를 옮겨 개점할 식당에서 이 셰프의 시래기 닭찜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셰프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43살 때였다. 아이들을 키운 후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며 부여 특산물인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로 했다. 주변에선 여자 혼자 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수확 첫해부터 농사는 풍작이었다. 하지만 표고버섯 시세가 좋지 않았고, 정성껏 키워낸 버섯을 헐값에 팔기 싫었다. 이 셰프는 매실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수확한 버섯으로 표고버섯청을 만들었다. 1년 뒤 항아리를 열어보니 예쁜 갈색에 좋은 향이 나는 버섯청이 완성됐다. 이 셰프의 표고버섯청은 물에 타 마셔도 맛이 좋고, 음식에 넣어 함께 요리하면 느끼함을 잡아준다. 이후에도 이 셰프는 직접 기른 표고버섯을 가지고 묵·초밥·포·젤라토·강정 등 수많은 요리를 개발하며 표고버섯의 가치를 높여나가고 있다.

이 셰프의 표고버섯농장 전경. 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나경버섯 사진제공

2013년 이 셰프는 ‘나경버섯’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충남 서천 종갓집에서 태어난 이 셰프는 할머니가 요리를 배우라고 할 때도 싫다며 도망 다니던 시절을 잊질 못한다. 그럼에도 어깨너머로 봐왔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조리법은 결국 그를 충남,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 대가의 길로 이끈 것이다.

“충남 음식이 슴슴하다고들 하잖아요. 바다·산·들이 다 있는 지역 안에서 나온 식재료의 제맛을 보여주기 위해 자극적인 양념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식당 손님, 그리고 요리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에게 지역 한식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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