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브라질이 구입하는 한국 커피' 스페셜티 커피 시대 이끄는 최상기 위트러스트 대표

최연진 2024. 10.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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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발굴한 중남미, 아프리카 커피농장에서 생두 직수입
K커피 맛 살린 커피믹스 만들어 해외 수출

통계청이 2017년 발표한 한국의 10대 발명품 가운데 5위는 뜻밖에도 커피믹스(혼합커피)다. 훈민정음,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 등 1~4위를 차지한 우리 문화유산에 이어 해외에서 들어온 커피가 5위에 오른 것이다. 커피 자체는 조선시대 해외에서 들어왔지만 커피와 크리머(커피에 넣는 크림), 설탕을 섞어 가루로 만든 커피믹스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맥심' 상표로 동서식품이 판매한 커피믹스는 국내뿐 아니라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통해 해외에도 알려져 큰 인기를 끌며 한국산 커피, 즉 K커피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데 커피믹스를 발명한 동서식품이 못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맥심의 수출이다.

맥심은 동서식품이 제휴해 들여온 미국 식품회사 제네럴푸드(지금의 크래프트하인즈)의 상표다. 따라서 동서식품은 맥심이라는 이름으로 커피믹스를 수출할 수 없다. 해외에서 팔리는 맥심 커피믹스는 보따리상 등이 비공식적으로 파는 것이다.

여기에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창업해 도전장을 던진 주인공이 있다. 2015년 고급 커피(스페셜티 커피)를 생산하는 전문업체 위트러스트를 창업한 최상기(55) 대표다. 위트러스트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인터넷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국내 1위 업체다. 올해 그는 커피도슨트라는 별도 회사를 또 만들어 커피믹스 수출에 나섰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K커피의 수출 도전기를 들어 봤다.

최상기 위트러스트 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해외 수출을 위해 새로 만든 혼합커미 '샐리살롱'을 들어 보이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다방 커피가 좌우한 '웃픈' 역사

가루를 물에 타면 바로 마실 수 있는 즉석 커피(인스턴트 커피)는 전쟁과 연결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즉석 커피를 알린 것은 1938년 '네스카페'를 만든 네슬레다. 즉석 커피는 이듬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장에서 군인들이 마시며 널리 퍼졌다.

국내에 즉석 커피가 들어온 것도 한국전쟁 때였다. 주한 미군이 가져온 즉석 커피를 개량한 것이 소위 다방 커피다. 다방들은 즉석 커피가 너무 써서 팔기 힘들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전지분유와 설탕을 섞어 먹기 좋게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즉석 커피에 크리머와 설탕을 넣지 않았다. 결국 다방이 우후죽순 퍼지며 한국의 커피 맛을 결정했다.

이후 등장한 혼합 커피는 또 한번 한국의 커피 문화를 바꿔 놓았다. 혼합 커피는 아예 크리머와 설탕까지 섞어 놓아 그냥 물에 타기만 하면 된다. 사무실에 혼합 커피를 비치하면서 자동판매기(자판기)와 다방이 사라졌다.

그 바람에 커피 콩을 볶은 원두를 팔기 시작했을 때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최 대표는 2012년부터 3년간 국내 원두 공급업체 한국맥널티에서 커피 사업 총괄 상무로 일했을 때 겪은 일화를 떠올렸다. "맥널티에서 처음으로 대형 유통점에 원두를 공급했다가 많은 항의를 받았어요. 즉석 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이 원두를 사서 물에 넣었다가 녹지 않는다며 항의를 했죠. 한국에서 커피는 가루 식품이었어요."


잘못 알려진 커피 맛 바로잡으려 창업

최 대표는 가맹점(프랜차이즈) 커피도 국내에 잘못 알려진 커피 맛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가맹점 커피는 맛이 일정해야 해요. 같은 가맹점인데 서울과 부산에서 마신 커피 맛이 다르면 안 되죠. 그래서 커피를 무조건 많이 볶아요. 많이 볶는 다크 로스팅을 하면 커피 본연의 맛이 사라지고 쓴맛만 남죠. 즉 쓴맛으로 통일해 맛의 일관성을 유지해요. 그래서 가맹점 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은 원두 고유의 신맛이 살아 있는 커피를 이상하게 느껴요. 진짜 커피의 맛을 모르는 거죠."

심지어 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도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가맹점 커피에 익숙한 젊은 바리스타 중에 신맛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바리스타는 커피 고유의 맛을 살리지 못해요."

여기에는 가맹점 커피의 원두 특성도 한몫한다. "가맹점이 사용하는 커머더티 커피 원두는 비용 때문에 단일 품종이 아닌 여러 원두를 섞어요. 여러 원두가 섞이면 맛의 편차가 심하죠. 이를 없애려면 진하게 볶을 수밖에 없어요."

원두를 심하게 볶아서 만든 커피는 건강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식품학자들은 원두를 강하게 볶으면 1급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나온다고 주장해요. 고기도 탄 부분을 잘라내고 먹는데 왜 커피는 진하게 태워서 마시냐는 거죠."

최상기 위트러스트 대표가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을 방문해 생두를 살펴보고 있다. 위트러스트 제공

'갱단과 산적 위협' 목숨 걸고 농장과 거래

최 대표가 제대로 된 커피 맛을 알리려고 창업한 위트러스트는 50여 종의 스페셜티 커피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스페셜티 커피란 산지마다 다른 독특한 풍미를 간직한 고급 커피다. "스페셜티 커피 생두를 들여와 볶아서 카페에 공급하고 원두와 드립백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해요. 또 사명과 같은 이름의 카페도 서울 구로, 마포와 세종시 등 6군데 운영해요."

스페셜티 커피는 이력 추적이 가능하다. "어느 지역의 어떤 농장주가 어떤 품종을 얼마만큼 고도에서 재배했는지 모두 기록해 판매해요. 심지어 토질까지 기록하죠."

당연히 스페셜티 커피는 일반 커피와 맛이 다르고 가격이 비싸다. "커피는 같은 농장에서 같은 품종을 재배해도 고도에 따라 맛이 달라요. 스페셜티 커피는 재배 환경 차이에서 발생하는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때문에 일반 커피와 맛이 다르고 가격이 비싸죠."

최 대표는 좋은 스페셜티 커피 보급을 위해 직접 커피 농장을 찾아가거나 현지 파트너를 통해 고품질의 생두를 수입한다. 이를 위해 그는 2015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SCAA)의 시험을 거쳐 커피품질 평가사인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땄다. 큐그레이더는 커피 생두의 품질을 결정하는 전문가다. "수입업체에서 생두를 가져오는 스페셜티 커피업체들이 많은데 우리는 에티오피아, 브라질, 파나마 등 여러 지역의 농장과 계약을 맺고 생두를 직접 가져와요. 이게 가장 큰 차이죠. 브라질 일부 농장에서 나오는 생두의 경우 국내 독점 공급권을 갖고 있어요."

좋은 생두를 고르려면 재배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포도주 용어로 재배환경을 뜻하는 테루와를 확인하려고 1년에 두세 번 커피 농장을 방문해 매번 2, 3주씩 머물러요. 농장의 생육환경을 살피고 현지에서 생두를 끓여 맛을 보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농장 방문은 위험하다. 공교롭게 중남미 일부 지역의 커피 농장은 코카인 재배지와 위치가 비슷하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기온이 유지되는 환경에서 커피가 잘 자라요. 이런 곳에 마약 갱단과 산적들이 있어서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총을 가진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여요."

이렇게 구입한 생두를 세종시 공장에 설치한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기센사 기계를 이용해 중간 정도로 볶는다. "생두를 볶는 과정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져요. 커피 맛을 결정하는 비중은 생두 70%, 볶는 과정 20%, 바리스타 추출 기술 10%죠."

엄격한 생두 선별과 제조 과정을 거친 덕분에 기업간거래(B2B) 형태로 커피를 공급받는 기업이 늘고 있다. "SK텔레콤, 고용노동부, 쿠팡, 중국공상은행 등 30여 곳이 커피를 공급받죠. 심지어 브라질 대사관도 브라질 커피 홍보를 위해 커피를 사 가요. 그만큼 맛에 대한 신뢰가 깊죠."

덕분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고 있다. "매출액을 공개할 수 없지만 매년 50% 가까이 성장해요. 그래서 투자와 대출을 전혀 받지 않았어요. 영업이익은 좋은 설비와 매장 확대, 신규 사업 등에 계속 투자하죠."

최상기 위트러스트 대표의 목표는 "맥심이 하지 못한 혼합커피의 수출"이다. 이를 위해 한국적 디자인과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승부를 걸었다. 류기찬 인턴기자

"맥심이 못 한 일 하겠다"

최 대표가 지난 4월 커피도슨트를 창업한 것은 커피 수출을 위해서다. 커피도슨트는 경기 하남시 공장에서 커피믹스나 커피백을 제조해 수출한다. 커피 수출은 많은 기업이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눈길을 끄는 디자인과 다품종 소량 생산 등 두 가지 무기로 승부를 건다. 조만간 해외 출시 예정인 커피믹스는 이름부터 독특한 '샐리살롱'과 '파투'다. 샐리살롱은 한복을 입은 여인이 귀여운 돼지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양화풍 그림이 인상적이다. 신윤복 화백의 '미인도'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위해 함보경 작가와 계약을 맺었다. 파투는 전 세계 한 마리만 남은 멸종위기종 흰코뿔소 이름에서 따왔다. 제품명도 일부러 한글로 적었다. "해외에서는 한글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으로 인기 있어요. 제품명 글씨는 영화 '서울의 봄'과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제목을 쓴 김성태 작가가 썼어요."

디자인으로 차별화한 커피믹스 제품을 앞으로 10여 종 이상 출시할 계획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시장의 반응을 보고 빠르게 변화를 주는 린마케팅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환경오염 논란 때문에 캡슐커피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캡슐커피는 용기를 분리수거할 수 없어 환경오염 논란이 일면서 매년 미국에서 소비량이 10%씩 감소해요. 용기의 재활용이 가능해질 때까지 캡슐커피를 만들 계획이 없어요."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나온 최 대표는 정보기술(IT)과 유통업계에서 오래 일했다. 대학 졸업 후 현대그룹의 시스템통합(SI) 업체인 현대정보기술과 이베이코리아가 된 전자상거래 업체 옥션에서 근무했다. 이후 토피아에듀케이션을 거쳐 한국맥널티에서 커피와 연을 맺어 위트러스트를 창업했다.

향후 그의 목표는 "맥심이 못 한 일을 하는 것"이다. "커피믹스로 세계 시장에 제대로 된 이정표를 찍고 싶어요. 세계 커피시장에서 통하는 우리 고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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