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자연의 빛… 반딧불이 안내하는 무주의 밤

무주=손효림 기자 2024. 10.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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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크리에이 투어] 전북 무주군 편
덕유산 트레킹-솔방울 만들기 등… 다채로운 1박2일 농촌 체험 선사
무형문화유산 낙화놀이 ‘불멍’ 백미
전북 무주는 청정 지역에서만 사는 반딧불이를 보기 좋은 곳이다. 매년 8월 말부터 9월 초에는 무주반딧불축제가 열린다. 무주군 제공
풀내음이 짙은 가운데 캄캄한 어둠 속을 춤추듯 수놓는 불빛들이 있었다. 연둣빛 같기도 하고 노란빛 같기도 한 그건, 반딧불이였다. 마침 구름이 달빛을 가린 덕분에 반딧불이가 뿜어내는 빛은 더 또렷했다. 전북 무주군 뒷섬마을을 30분 넘게 걷는 동안 쉼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딧불이가 만들어내는 빛의 일렁임에 탄성만 나왔다.

덕유산 향적봉에 오르고, 우리 전통 불꽃놀이인 낙화놀이를 즐기는 한편 직접 키운 채소로 차린 시골밥상을 맛보니 무주에서의 1박 2일이 금방 지나갔다. 기자가 체험한 건 ‘농촌 크리에이투어-무주1614’다.

농촌 크리에이투어는 크리에이티브(창조적인)와 투어(관광)의 합성어로,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시작한 농촌관광 활성화 사업의 새 형태다. 무주군은 ‘무주1614’라는 브랜드로 무주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시원한 절경, 푸짐한 시골밥상

늦더위의 기세가 맹렬하던 지난달 26일, 무주에 도착하니 선선했다. 무주는 해발 600m에 자리한 고랭지다. 덕유산 꼭대기인 향적봉에 오르기 위해 20분 가까이 곤돌라를 탔다. 곤돌라에서 내려 600m가량 올라가면 향적봉에 이른다. 경사가 완만한 데다 계단식 덱길을 설치해 걷기 수월하다. 어린이나 어르신도 여럿 보였다.

향적봉에 오르니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 마이산 등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아래로 널따란 안성평야도 보였다. 이부영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자연환경해설사는 “덕이 많아 넉넉하다는 뜻을 지닌 덕유산은 해발 1614m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높다. 계절마다 매력이 뚜렷한데 특히 겨울철 상고대가 일품이다”라고 말했다.

덕유산을 내려와 솔다박체험휴양마을로 이동했다. 숙박 및 바비큐 시설을 갖춘 이곳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먼저 식빵 만들기를 했다. 발효시킨 식빵 반죽의 촉감이 보들보들하다. 최인영 제빵 강사는 “호밀잡곡 식빵에는 무주 특산물인 호두를 넣었다”고 말했다. 치즈를 넣은 먹물 식빵도 만들었다. 오븐에서 갓 구워낸 식빵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계속 손이 갔다. 무주에서 재배한 블루베리로 만든 콩포트를 발라 먹으니 상큼함이 더해졌다.

솔방울 가습기도 만들었다. 둥글게 묶은 칡넝쿨에 소금물로 삶은 후 말린 솔방울을 붙이면 된다. 이혜진 솔다박체험휴양마을 사무국장은 “솔방울은 습기를 머금으면 오므라들고 건조하면 활짝 펴져, 우리 선조들은 문 앞에 솔방울을 달아두고 날씨를 예측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솔방울 가습기를 물에 푹 담가놓으니 마치 조개가 입을 꼭 다문 것처럼 솔방울이 오므라들었다. 이를 방에 걸어놓으니 솔방울이 서서히 마르며 활짝 벌어졌다. 신통한 자연 가습기다.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 구들장돌을 갈아 만든 불판 위에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밭에서 바로 캔 파로 담근 파김치, 역시 직접 키운 상추와 고수, 고추는 아삭아삭하고 신선하다. 엄나무순나물, 열무김치, 잡채, 떡볶이, 시래깃국까지, 푸짐하다. 새송이버섯과 직접 키운 고구마를 은박지에 싸서 숯불에 구우니 감칠맛이 더해진다. 시골밥상이어서일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었는데도 속이 편했다.

●반딧불이, 낙화놀이…빛의 향연

해가 지자 뒷섬마을로 반딧불이를 보러 나섰다(앞섬마을도 반딧불이가 많다고 한다). 청정지역에 사는 반딧불이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깜깜한 길을 30분 넘게 걸으며 반딧불이를 계속 볼 수 있었다. 온전히 자연이 만들어낸 빛. 신비로웠다. 티셔츠에 반딧불이가 살짝 내려앉자 셔츠의 글씨가 보였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은 옛사람들의 과장된 표현이라 여겼는데…. 매년 8월 말부터 9월 초에 열리는 무주반딧불축제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우리 전통 불꽃놀이인 낙화놀이. 한지와 숯, 소금, 쑥으로 만든 낙화봉을 물 위에 매단 줄에 걸어 불을 붙이면 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무주안성낙화놀이보존회 제공
이어 낙화놀이. 물 위에 길게 매단 줄에 낙화봉을 줄줄이 걸어 불을 붙이면 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낙화봉은 한지에 숯가루를 평평하게 펴 올리고 소금을 뿌린 후 쑥으로 길쭉하게 만든 심지를 넣는다. 그리고 돌돌 말아 반으로 접은 뒤 서로 엇갈리게 배배 꼬고 끝부분을 실로 묶는다. 철사를 끼워 고리를 만들면 완성된다. 실제 해보니 숯가루가 흘러나오거나 꼬는 과정에서 한지가 찢어지는 등 쉽지 않았다. 박일원 무주안성낙화놀이보존회장은 “뽕나무로 숯가루를 만들고 천일염을 구워 건조시킨다. 쑥을 캐고 말려 심지를 만드는 등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다 한다”고 말했다. 낙화놀이는 전북 무형문화유산이다.

두문마을에 있는 두문저수지에서 낙화놀이를 했다. 주위에 다른 불빛이 없는 가운데 오직 낙화봉의 불꽃만이 터지면서 떨어져 내린다. 불꽃은 저수지 물에 거울처럼 반사돼 마치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쑥 냄새가 은은하게 실려 온다. 빛의 폭포가 위에서, 아래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된 ‘불멍’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다음 날인 27일 아침에는 솔다박체험휴양마을 옆에 있는 솔바람길을 산책했다. 우아하게 뻗은 적송이 멋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산책길에서는 보물찾기도 진행됐다. 선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 여기저기를 살피다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1박 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꽉 찬 듯했다.

농촌 크리에이투어는 전국 20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웰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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