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김동연스러운 국감을 보다
맹탕·재탕 질의도 최선
정치 뺀 행정 국감 표본
삼겹살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식당 앞인데 취기는 시작된다. 동반자의 환한 얼굴이 보인다. 설렘으로 심장이 간지럽다. 윗분이 하는 권주사가 있다. “김 주필은 술을 마셔야 글이 잘 나온대.” 오늘에서야 얘긴데, 틀리셨다. 나는 글부터 써야 술이 맛있다. 어제도 사설 끝내고 식당으로 갔다. 그 흥겨움을 깨는 울림이 왔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다. 미간부터 찌푸려진다. 10년 넘게 생긴 관성이다. 퇴근 후 회사 전화는 나쁜 일이다. 아니면 귀찮거나.
예감에는 반복된 경험이 있다. 역시 그랬다. “사설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정 부장’의 걱정은 이랬다. 낮에 경기도 국정 감사가 있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출석했다. 그걸 쓴 사설인데 이런 제목이다. ‘여당 의원이 존경한다고 한 김동연 국감.’ 기자의 기사는 느낌이 달랐다. ‘민생 실종...이재명·김건희 재탕 삼탕.’ 같은 청문회, 달리 보이는 두 글이다. 사설 제목을 고쳤다. ‘非·反 이재명 피해간 김동연.’ 정서의 차이가 좁혀졌다. 술맛은 다 떨어졌다.
국감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없다. 경기일보 생중계를 종일 틀었다. 하나 얻어 걸리기를 기대했다. 국회의원과의 거친 설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 언론이 찾는 먹잇감이다. 여기에 김동연 국감만의 특수도 있다. 非이재명 또는 反이재명 발언이다. 중량은 달라도 둘 다 잠룡이다. 상호 견제가 인지상정이다. 최근 김 지사 입에서 잦아졌다. 부지런한 기자는 대략 써 놨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기대로 봤다. 그 국감에 대한 기자와 나의 품평이다.
취재 기자 평도 옳다. 민생이 사라진 국감이다. 서로 이재명·김건희에만 매달렸다. 했던 말 재탕하고 삼탕했다. 알맹이 없는 헛물 국감이다. 알고 보면 그럴 이유가 있다. 민주당 도지사다. 공격할 정당이 안 보인다. 행안위 22명 중 국민의힘은 8명뿐이다. 그나마 경기도 지역구는 한 명도 없다. 서초구 국회의원이 뭘 알겠나. 부산 국회의원들이 무슨 질문을 하겠나. 아는 것도 없고, 의욕도 안 보였다. 긴박감도 없었고,열기도 없었다. 맹탕 국감.
그렇다고 내 촌평을 철회할 건 아니다. 시청 어느 순간부터 관점은 달라졌다. 답변하는 도지사의 능력을 채점하게 됐다. 도정을 논함에 막힘이 없었다. 전날 패소한 일산대교 무료화를 묻자 이용자들의 실태와 필요성을 설명했다. 대북 전단 살포 대책을 물었더니 접경지 위험구역 설정 검토를 밝혔다. 반도체 클러스터 도로 질문에는 현황과 구상을 두루 밝혔다. 취임 전의 업무라고 빼지도 않았다. 채무 증가, 지역화폐 논란.... 다 상세히 답했다.
억지 이슈 만들기도 없었다. 언론은 非·反이재명을 기대(?)했다. 여기엔 9월에 던져 놓은 불씨가 있다. ‘전 국민 25만원’에 대한 이견이다. ‘어려운 계층 지원이 낫다’고 했다. ‘2020년 지원금도 소비랑 연결되는 게 높지 않았다’고도 했다. 여권은 환영했고 야권은 당황했다. 국민의힘이 다시 간극 벌리기를 시도했다. 예산편성권 침해 가능성과 소비 진작 효과 의문을 제기했다. 대답은 ‘문제 없다’, ‘소비진작 효과 크다’였다. 국감장은 조용해졌다.
질문이 맹탕이어도 답변은 충실했다. 재탕하는 질문에도 반복해 답변했다. 경청의 도리는 끝까지 지켰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챙기겠습니다’.... 잘 못 들었을까-. 상대 정당에서 갑작스러운 말이 나왔다. ‘존경합니다’, ‘답변도 잘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이다. 그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청문이고 국감 아니었나. 언론이 난장 국감장을 부추긴 게 아닐까. 우리가 잊었던 표본이 이거일 수도 있다.
확 끄는 기사가 없으면 어떤가. 도민의 궁금증 많이 풀어줬는데. 정쟁이 없어 좀 닝닝하면 어떤가. 보는 국민 편하게 해줬는데. 어젯밤 괜히 제목을 바꿨다. ‘여당 의원이 존경한다고 한 김동연 국감.’ 그냥 둘 걸.
김종구 주필 1964kj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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