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시인 메틴 투란 “시에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있죠”

임근호 2024. 10. 1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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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문학제, 올해 창원KC국제문학상 수상
올해 창원KC국제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시인 메틴 투란은 “우리의 언어에 깃든 놀라운 치유력으로 온 세계를 어루만지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달진문학관 제공

“우리가 쓰는 말, 시적 언어에는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말과 문자로 형제애를 꽃피울 그런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밖에 있는 악만큼이나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밝히는 언어가 필요하지요.”

제15회 창원KC국제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시인 메틴 투란(Metin Turan)은 “우리의 언어에 깃든 놀라운 치유력으로 온 세계를 어루만지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창원KC국제문학상은 창원시가 2010년 마산⸱진해와 통합하면서 한국문학 세계화와 국제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진해 출신 시인이자 한학자인 김달진(1907~1989)을 기리는 김달진문학관이 주관한다. ‘K’는 김달진⸱경남⸱코리아, ‘C’는 창원의 영문 첫 글자다. 매년 인본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해외 문인을 수상자로 선정한다.

메틴 투란은 올해 5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문화적 암흑기인 튀르키예의 1980년대에 많은 문예지를 창간하며 문단을 이끌었고 이후로도 시대적 고민과 실존적인 활동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시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지난 12~13일 김달진문학제에 참가한 그를 창원시 진해구 소사마을 김달진문학관에서 만났다. 그는 방한 직전 튀르키예 최고 권위의 ‘튀르키예 시인상’을 받았지만, 자신의 겹경사를 제쳐두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전 세계 30개국 언어로 번역돼 폭넓은 사랑을 받는 ‘세계 시인’다운 인사였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거의 40년 전이다. 1987년 한국외국어대 터키학과 1기 학생들이 졸업앨범을 준비하며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서신으로 보냈을 때 이를 현지 언론에 소개하면서 한국과 소통을 시작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세계작가대회의 튀르키예 대표로 방한했고, 2023년 서울대 주최 국제학술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는 이번 김달진문학제의 KC국제문학상 수상 기념 특강에서 “좋은 문학은 울타리를 깨고 국경을 넘는 것”이라며 디지털 변혁과 문화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한국문학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디지털 변혁과 웹툰의 국제적 확산은 문학 작품을 대중친화적으로 만들었고 지역적, 민족적 문화의 경계를 넓혔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테크놀로지 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튀르키예의 ‘테크놀로지 문학’ 현황에 관해서는 “아직 종이책 비중이 높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자책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특히 한국 웹툰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아마 전 세계가 그렇지 않나요? 한국 웹툰과 디지털 문화의 수준은 아주 높죠. 시 부문도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시각적 효과가 굉장히 중요해졌잖아요? 김달진문학제 첫날 행사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순식간에 3만 명이 넘게 봤더라고요. 문학에서도 이런 확장성을 잘 활용해야겠죠.”

AI(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과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AI 기술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니만큼 다소 위험 요소가 있더라도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만약 저보다 더 시를 잘 쓰는 AI가 있으면 저는 존중할 겁니다.” 

그는 “한국의 디지털 변혁과 기술 발전이 놀라운 만큼이나 오랜 전통과 역사의 기억을 담은 문학관과 시인의 생가를 보존하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며 “언어의 미학적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창원KC국제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시인 메틴 투란(가운데)이 김달진문학상 수상자인 고두현 시인(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통역을 맡은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시인과 언어의 역할을 현실에 잘 접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날 세계문학은 개인과 집단의 자율성을 더욱 확대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언어의 힘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이지요. 이는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세상에 평화를 앞당기게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언어의 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단어로 ‘양심’을 꼽았다. “사랑과 평화, 형제애, 우정 등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에 반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소수의 권력자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죠. 전 세계의 고통과 상처, 비극을 어루만지는 최고의 치유법은 바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을 일깨우고 함께 살리는 것입니다.”

그는 또 “우리는 문학과 같이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미적 가치를 통해서만 두려움에 휩싸인 세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시는 행복의 확산을 위한 씨앗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화를 마치고 문학관을 나서는데 그가 되물었다. “영국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누가 먼저 생각나요?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이 영국 하면 빅벤이나 여왕, 템스강을 떠올리죠. 셰익스피어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앞으로 어떤 나라를 생각할 때 그 나라의 대표적인 문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런 세상이 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문학과 언어의 힘이 더 커지고 전쟁과 고통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임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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