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年 10여개 핵폭탄 생산 예고한 北, 이건 딥페이크가 아니다
그사이 북은 강선 핵무기연구소를 첨단 반도체 공장 수준으로 키워
김정은 “기하급수적 핵무기 생산” 촉구… 현실 직시하는 대응 필요
북핵이 이 지경에 오기까지 한국 정치인들의 도움이 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이 핵을 개발할 리가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은 방어용이라고 했다. 맥매스터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핵은 방어용으로 그대로 두고 제재 해제를 미국에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보수 지도자들 역시 비핵화에 속수무책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북핵의 실체를 부인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의도적인 무시 정책이다. 민족 공조를 내세워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핵은 골칫거리였다.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핵무기가 등장했으나 단순 도발로 치부했다. 그동안 정상회담 5차례를 포함해 남북은 667차례의 회담을 개최했지만 북핵 문제를 제기한 건 14차 장관급 회담이 유일했다. 북핵은 조미(朝美) 간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때로 ‘서울 불바다 발언’을 내놓는 북한의 강경 입장에 막혀 대화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회담 개최 자체에만 집중하느라 핵은 뒷전이었다.
국가정보원과 정보사령부 등 정보기관은 청와대 속내를 파악해 북핵을 과소평가하는 맞춤형 보고에 집중했다. 무기가 방어용인지 공격용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주관적인 왜곡이다. 혹시 민족주의 발상으로 남북한이 통일되면 북핵도 한반도 소유물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면 핵무기의 속성과 국제 정치에 대한 무지다. 핵으로 무장한 통일 대한민국을 인정할 국가는 없다. 비핵화가 통일의 선결 조건이라는 점은 동북아 국제 정치의 초보적인 상식이다.
평양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했지만 핵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자 아예 실물을 공개했다. 2010년 평안북도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 일부를 공개했다. 하지만 핵심 시설과 장비는 사진이 없어 추론만 무성했다.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허풍을 떨고 있다고 했다. 2004년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칸 박사가 우라늄 원심분리기 기술의 설계도와 부품을 북한에 전해줬지만 미 중앙정보국(CIA) 등 서방 정보 당국은 현물 추적에 실패했다. 6차례의 핵실험에도 시설 내부는 오리무중이었다.
김정은은 지난달 평양 의사당 서쪽 강선으로 추정되는 핵무기연구소와 우라늄 농축 기지를 둘러보고 ‘기하급수적인’ 핵무기 생산을 촉구했다. 김정은이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고 할 정도이니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강선 원심분리기는 소형화, 경량화 및 표준화에 성공해 연간 10여 개의 핵폭탄 제조가 가능하다.
기존 영변의 핵 시설이 단순 철강 제조 시설이라면 강선은 첨단 반도체 공장 수준이다. 기존의 50개의 핵무기에다 김정은의 표현대로 ‘기하급수적’으로 핵무기 생산에 나설 경우 북한은 몇 년 안에 인도·파키스탄을 제치고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에 이어 여섯 번째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된다.
첨단 장비를 갖춘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 시설이 전격 공개되면서 북핵이 가상현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장이 AI(인공지능)에 의한 딥페이크라고 믿고 싶은 정치인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북한이 HEU 실물을 공개한 것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핵 무력을 과시해 차후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핵심은 평양의 의도보다는 핵무기 실체다. 북한의 핵무기 시설 공개의 이유가 무엇이든 가상으로 존재하던 핵무기가 땅으로 내려왔다.
북핵은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에 의해 처음 공개된 이후 브레이크 없이 질주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6자 회담 등 국제 공조 역시 백약이 무효였다. 김정은은 2017년 6차 핵실험이 수소탄 실험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의 대가로 이룩한 조선 인민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북핵 피로감이 지속되며 분위기도 묘하게 변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수장조차 비핵화가 어려우니 북핵을 인정하고 핵 군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지난달 국제사회가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인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고 북핵을 인정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동안 대화가 없어서 비핵화가 안 됐다는 주장은 미북 정상회담과 6자 회담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노력을 간과한 것이다.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야당 정치인은 통일을 포기하자는 폭탄 선언을 했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 방침을 전격 수용하자는 명분으로 평화를 내세웠다. 그는 두 국가론의 의도가 한민족이 아닌 적대국 남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위한 양면 전략이라는 점을 파악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현물을 보지 못해 북핵을 과소평가하고 폄하했던 정치인들도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자.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동시에 우리의 초당적 대응이 쉽지 않은 국내 정치 상황이지만 대응책을 논의하자. 핵 보유 국가들과 국경을 맞댄 국가들의 대응 방안도 꼼꼼하게 알아보자.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움직이자. 미 대선 이후 내년 봄으로 예상되는 신임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존 미국의 확장억제 동맹 방어 전략에 플러스 알파(α)를 요청하는 방안도 준비하자.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완전히 가능한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하자.
마침내 김정은은 국군의 날 기념사를 겨냥해 핵보유국 문전서 군사력을 거론한다며 윤 대통령을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핵보유국과의 군사적 충돌에서 생존을 바라고 행운을 비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협박했다. 북한은 1994년에는 재래식 무기로 ‘서울 불바다’ 위협을 하더니 2024년에는 핵무기로 위협했다. 소는 잃었지만 이제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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