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41] 사실 모든 것은 올림픽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2024. 10. 1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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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칸영화제에 처음 간 건 2004년이다. 박찬욱 ‘올드보이’와 홍상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경쟁 부문에 오른 해다. 한국 영화가 갓 세계적 인정을 받기 시작한 해다. 할 일이 많았다. 외국 기자 코멘트를 따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본 기자들에게 물었다. “영화 어떻게 봤어?” 한 미국 여성 기자가 말했다. “한국 여자들은 엉덩이가 다 그렇게 빈약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칸영화제 오는 기자 수준이 다 높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내뱉고는 킴 카다시안 같은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졌다.

그 뒤로도 한동안 칸영화제를 갔다. 한 가지 치명적 사실을 더 깨달았다. 한국 매체들은 “칸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는 문장을 종종 썼다. 예술을 두고 수상 여부에 집착하는 건 품격 없는 태도라는 호통이었다. 막상 가니 사정이 달랐다. 칸영화제는 올림픽이었다. 타국 기자들도 자국 영화 수상에 예민하게 매달렸다.

당연한 일이다. 매년 후보작을 내놓을 정도가 아닌 국가 사람들에게 칸영화제 수상은 국가적 자랑거리다. 굳이 부인하는 것도 결벽증적인 태도다. 어떤 분야든 시상식은 인정을 받기 위한 장소다. 인정을 받으면 즐기면 된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도 그렇다. 올림픽 금메달처럼 국뽕에 차올라 기뻐하는 것도 경박한 일은 아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독자 선정 최고 레시피를 소개했다. 나는 ‘고추장 캐러멜 쿠키’ 앞에서 잠시 혼돈을 느꼈다. 이런 걸 보고 기뻐하는 건 지나친 국뽕인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본 문화가 세계적으로 떠오르던 시절에는 일본인도 와사비 캐러멜 쿠키 따위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제 막 시달리기 시작한 한국인은 좀 더 시달려도 괜찮다.

오늘은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김치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해먹을 생각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으면서 먹을까 한다. 국뽕 한 꼬집 이븐 하게 넣으면 생각보다 맛이 근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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