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과소평가받은, 50년 전 한국 대학생 사진가[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우리 주변엔 수많은 이미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때로는 사진 한 장이 우리를 다른 시간과 다른 세계에서 잠시 살게 만들기도 한다. 일상에 가까운 이미지마저도 사진을 통해 응시하는 동안 눈물을 흘릴 만큼 감탄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계속 사진집을 찾아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 서점에서 미술사학자 김지희 교수의 ‘Photography and Korea’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사진집이 아닌 학술서라 사진보다 글이 많다. 그런데 나는 미국 애리조나대 전임교수인 김 교수의 책을 통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유명한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이 20세기 초 러일전쟁 당시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과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던 사진들을 암시장에서 구입했다는 기록 등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새로운 한국 사진작가를 발견한 것이다.
사진가 권부문은 중앙대 재학 중이던 1975년 ‘포토 포엠’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전시했다. 김 교수는 책에서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주의로 도시를 기록했던 이전 세대의 사진가들과 달리 권부문은 지나가는 장면과 우연한 만남을 포착했다”고 설명한다. 그의 사진에는 문화적인, 혹은 정치적인 메시지가 없고 일관적인 서사도 없다.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 없이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보인다. 1973년부터 1975년 사이 서울, 부산, 대구와 주변 지역의 평범한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은 극명한 흑백의 대비로 신비롭고 기이하며 급진적이다. 하지만 당시 이 사진은 혹평받았고, 지금의 권부문 작가는 당시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선명하고 기술적으로 전통적인 사진 기법에 익숙한 당시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그의 사진은 너무 어둡거나 거칠었고, 소외된 사회가 보이지 않는 구도로 찍혀 이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비슷한 무렵인 1972년 일본에서는 유사한 스타일의 사진가 모리야마 다이도가 ‘写真よさようなら(Farewell Photography)’라는 사진집을 출간하여 반향을 일으켰다. 오늘날 모리야마는 20세기 후반 세계 사진사의 흐름을 바꾼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스무 살의 권부문이 당시 비평가들의 맹렬한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지금의 모리야마와 동등한 지위를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1975년 권부문이 전시했던 사진들은 책으로 출판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작가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나에게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출판사를 차려서 권 작가의 책을 출간하는 거다. 내가 못 한다면 적어도 다른 출판사가 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권부문의 사진 한 장에는 어떤 시간과 어떤 세상이 온통 담겨 있으니 말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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